이주민이 마을사업 주도…이장선거 세 싸움도

입력 : 2020-06-03 00:00 수정 : 2020-06-04 10:16


‘텃세’는 귀농·귀촌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다. 귀농·귀촌과 관련된 정보를 찾으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원주민이 부리는 일방적인 텃세 때문에 귀농·귀촌을 포기했다는 경험담이 여전히 적지 않다. 귀농·귀촌 교육과정에 농촌마을의 관습을 이해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도 뒤집어보면 이런 ‘텃세’에 대한 방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마다 수만명에 달하는 수가 귀농·귀촌하면서 갈등의 양상도 사뭇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귀농·귀촌인이 텃세의 일방적인 피해자로 비쳤던 예전과는 달리 원주민이 귀농·귀촌인의 ‘역텃세’ 피해자가 되는 경우, 또는 귀농·귀촌인간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주민의 텃세로 인한 갈등도 여전히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완연하게 다른 생활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갈등을 방치하면 농촌주민들의 삶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농촌으로의 인구 유입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물론 농촌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손상될 수도 있다. 이에 귀농·귀촌을 둘러싸고 농촌마을에서 어떤 유형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지,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4회에 걸쳐 살펴본다.

 

 

농촌마을, 갈등관리가 필요하다 (1)굴러온 돌의 역텃세

해마다 귀농·귀촌인 크게 늘어 원주민 텃세 외 새로운 갈등 생겨

지역 개발·지원 둘러싼 충돌 이장 자리 놓고 쟁탈전도 벌여

젊은층 유입 꺼리는 분위기 감지
 




# 충북 제천의 한 마을에서는 이주민들이 마을사업에서 원주민을 배제하려고 해 갈등을 빚었다. 상호 비난과 고발이 이어지면서 험악한 상태까지 갔던 이 일로 마을은 둘로 쪼개졌다. 고소·고발건이 최근 무혐의 처리되는 등 마무리되면서 마을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 전북 진안의 한 마을에서는 이장직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새로 선출된 원주민 이장에 대해 이주민들이 문제 삼으며 불복했고 결국 이장선거를 다시 치러야 했다. 원주민과 이주민이 둘로 갈라져 마을 분위기가 흉흉해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촌마을에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마을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싼 원주민과 귀농·귀촌한 이주민간 일종의 주도권 싸움으로 인한 갈등이다.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의 마을 운영이 민주적·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원주민들은 이주민들이 농촌사회의 특성과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한다고 생각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일부 마을에서는 원주민들이 이주민에게 ‘역텃세’를 당한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도 생겼다. 그동안 원주민의 일방적인 텃세가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같은 상황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4~2018년 5년간 실시한 ‘귀농·귀촌인의 정착실태 장기추적조사:종합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는 “귀농·귀촌인들의 유입으로 기존 주민과 귀농·귀촌인의 구성 비율이 달라지고 원주민과 귀농·귀촌인간 갈등 양상이 달라졌다”면서 “일부 마을에서는 원주민과 귀농인의 비율이 절반 정도인 경우 서로 기싸움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농촌인구는 917만명인 데 비해 같은 해 한해 동안 늘어난 귀농·귀촌 인구는 50만명 수준이었다. 단순 계산하면 농촌인구의 5%가량이 단 일년 동안 귀농·귀촌한 사람들로 채워졌다는 뜻이다. 심지어 마을인구의 80% 이상이 이주민으로 구성된 곳을 비롯해 절반 이상이 이주민인 마을도 늘어나고 있다. 원주민과 이주민간 기싸움 등과 같은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 것이다.

원주민과 이주민간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가장 극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이장선거다. 원주민 측에서 내세우는 후보와 이주민 측에서 내세우는 후보가 달라 서로 대립하는 것은 물론 일종의 세 싸움으로까지 번져 마을이 두조각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위의 두 사례는 이같은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다.

각종 마을 지원사업이나 마을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도 심심찮다. 사업 유치를 두고 찬반이 엇갈리거나, 문서작업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이주민들이 사업을 주도하면서 원주민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 등이다. 이주민들은 ‘우리 덕분에 사업을 유치할 수 있었다’며 원주민들의 반응을 섭섭해하는 반면 원주민들은 ‘마을 이름으로 사업을 유치했으면서 원주민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발하는 것이다.

결국 젊은층 유입 등을 기대하며 이주민을 반기던 마을들이 귀농·귀촌을 반대하는 쪽으로 선회한 경우도 생겼다. 갈등이 심화되면서 일부 마을에서는 ‘귀농·귀촌인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14년 전 귀농한 한 귀농인은 “10년 전만 해도 마을에 유입되는 귀농·귀촌 인구가 많았는데 마을 내부 갈등이 깊어지면서 마을에서 귀농·귀촌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전했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는 “귀농·귀촌을 이야기할 때 원주민의 텃세만을 문제 삼으면 실제로 농촌마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어려워진다”면서 “귀농·귀촌 인구 증가에 따른 다양한 갈등 양상을 살펴보고 그 원인을 분석해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희·이현진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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