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농민이 전체 168만㏊ 중 44% 보유…말뿐인 경자유전

입력 : 2020-04-22 00:00 수정 : 2020-04-23 10:45

농지의 주인은 누구인가 (1)- 소유 현황과 문제점

1990년대부터 원칙 무너져 농사 안 지어도 취득 가능한 예외조항 무려 16개 달해

허술한 법 규정도 문제 농업경영 목적 농지 취득 즉시 농어촌공사 위탁 때 제한 못해

시세차익 노린 투기 속출 숙박시설 등 전용 부작용도
 


‘농지를 농사짓는 사람에게 돌려주자.’ 1950년 단행된 농지개혁의 정신이다. 농지개혁을 통해 자작농체계가 확립됐지만, 상속·이농의 증가 등으로 인해 70년이 지난 현재 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크게 증가했다. 농지개혁의 정신과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후퇴했다는 의미다.

농지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도 커지고 있다. 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늘면서 농지를 식량생산 기반이 아닌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비농민 농지 소유 갈수록 늘어=경자유전.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1948년 제헌 헌법 제정 이후 각종 법률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녹아 있었지만, 1987년에는 헌법 조문에까지 명시됐다. 당시 남북 대치 상황이나 식량자급 기반 확보 필요성 같은 정치·경제·사회적 여건을 고려한 것이다. 투기적 농지 소유를 막고, 농지 보호를 통해 식량자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많은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990년대 들어 이 원칙이 급격히 무너지면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농림어업총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 기준 전체 농지 167만9000㏊ 가운데 농민(농업법인 포함)이 소유한 농지는 94만4000㏊(56.2%)다. 비농민 소유 농지가 절반에 육박(43.8%)한다는 얘기다. 1995년만 해도 비농민 소유 농지 비율은 33%였으니, 20년 만에 10%포인트나 높아졌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크게 훼손된 셈이다.

비농민 소유 농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농촌 고령화 때문이다. 2017년 기준 70세 이상 고령농이 보유한 농지는 전체 농민 소유의 55% 정도다. 채광석 농경연 연구위원은 “이들이 은퇴하는 향후 20여년간 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급증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광범위한 예외조치 등이 원인=농사도 짓지 않는 많은 사람이 농지를 보유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예외조항 때문이다. 농지법 제6조는 영농 목적이 없더라도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예외조항이 갈수록 늘어 비농민 농지 소유가 너무 광범위하게 인정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가 무려 16가지에 이른다. 농지법은 제정 당시부터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 등을 경자유전 원칙의 예외로 인정했다. 2002년에는 농지법을 개정하면서 대부분 도시민인 취미농에게도 세대별로 1000㎡(302.5평·0.1㏊) 미만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2009년부터는 경사율 15% 이상인 농지도 비농민이 소유할 수 있는 농지에 포함됐다. 무엇보다 1996년 농지법 시행 이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농지는 농지법 적용을 아예 받지 않는다. 농민이든 비농민이든 당시에 가지고 있던 농지는 계속 합법적으로 보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강광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그동안 농지법 개정은 상속농지 소유 상한제 폐지 등 경자유전 원칙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허술한 법 규정도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지 취득 목적이 농업경영이라고 밝힌 다음 취득 즉시 한국농어촌공사에 해당 농지를 위탁하더라도 이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취미 영농을 위해 사들이는 농지(1000㎡ 미만)의 경우 여러 사람이 함께 취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1만㎡(3025평·1㏊)의 농지를 11명이 함께 산 후 지분 분할을 통해 건물을 지은 사례도 있다.

◆투기 등 부작용 속출=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늘면서 농지가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제주도가 대표적 사례다. 제주도는 2010년 들어 투기 광풍이 불면서 외지인들의 농지 소유가 2012~2014년 3년 사이 2배나 늘었다. 도가 이들의 농지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36%가 휴경 등 농지법을 위반했으며, 농지를 펜션이나 숙박시설 등으로 전용한 예도 많았다.

땅 투기는 소위 지도층이라 불리는 인사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한 언론이 국회의원 298명을 조사한 결과 무려 99명(배우자 보유 포함)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이 소유한 농지와 가까운 곳에 개발 또는 각종 규제 해제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줬다.

‘무늬만 농업법인’의 땅 투기도 심각한 수준이다. 감사원이 2013년 1월~2015년 7월 20개 농업법인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농업법인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업체였다. 이들 법인은 이 기간 776필지(141만6000㎡·42만8340평)의 농지를 사들이고 나서 이를 분할해 되팔았다. 농지 거래가 빈번했던 상위 5개 법인이 이 과정에서 거둬들인 시세차익이 118억원에 달했다.

농업회사법인의 농지 소유 요건을 느슨하게 규정한 게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농지법 제정 당시 농업회사법인은 농민이 대표이사 및 이사의 2분의 1 이상을 맡아야 했지만, 2009년 법 개정을 통해 농민 대표이사 조건이 폐지됐고 농민 이사 비율도 3분의 1 이상으로 완화됐다.

서륜 기자 seolyo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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