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잡은 결혼이민여성, 편견과 맞서다

입력 : 2020-04-08 00:00 수정 : 2020-04-09 00:04
이즈미야마 시가코씨(오른쪽)가 세종시 전의면 한 택시승강장에서 취재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다문화 열전 (15)명예기자 이즈미야마 시가코씨

중도일보 다문화기자단서 활동 이민 24년차로 한국어 실력 수준급

국제결혼 ‘성 상품화 광고’ 등 취재 “이민여성 권익 위해 목소리 낼 터”



“제가 그 아이 어머니라면 미쳐버렸을 것 같다고 기사에 썼었죠.”

이즈미야마 시가코씨(51)의 말이다. 2018년말 발생한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의 피해자는 어머니가 러시아 국적 고려인인 다문화가정의 아이였다. 세종시에서 다문화가정을 꾸린 24년차 엄마이자 3년차 기자인 시가코씨도 이를 보도했다.

시가코씨는 세종시가 지원하는 다문화기자단 사업을 통해 2016년부터 <중도일보> ‘다문화신문’ 코너의 명예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 코너에는 시가코씨를 포함해 중국·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9명의 결혼이민여성들이 명예기자로 활동한다. 이들은 다문화가정에 요긴한 생활뉴스는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훈훈한 기부 소식과 국제·문화 등 다방면의 주제를 기사로 쓴다.

취재부터 기사 작성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시가코씨지만, 결혼이민여성은 한글에 서툴다는 선입견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한번은 짧은 인터뷰를 하고 취재내용을 수첩에 적으려는데 취재원이 ‘제가 대신 써드릴게요.’ 하더라고요.”

시가코씨의 억양을 듣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취재원이 그녀가 한글에 약할 거라 지레짐작해 친절을 베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유, 예쁜 글씨로 취재내용 적어주시니 저는 ‘정말 감사합니다’ 했죠.”

순순히 수첩을 건넸다며 당시의 상황을 낙천적으로 이야기하는 시가코씨다. 사실 시가코씨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충남 연기군이 세종시로 행정명이 변하기 전인 2008년, 연기군 최초로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 6급을 취득했다. 6급은 외국인이 전문분야에서 연구나 업무수행에 필요한 한국어를 비교적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실력임을 나타내며, 시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다. 2011년엔 인클로버재단의 ‘다문화체험수기 공모’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어를 잘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국에 시집온 1996년엔 주변에 한국어를 배울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때는 ‘다문화’란 단어 자체가 없었어요. 다문화센터 같은 기관은 물론이고요. 달리 방도가 없어 혼자 단어를 외우고 자습하면서 TV를 스승으로, TV 속 대화 속도를 따라 변하는 방송 자막을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어요.”

동사무소에 갈 때면 한일·일한 사전 2개를 들고 가 사전을 보고 더듬어가며 물어봤고, 그마저도 어려우면 계속 다시 질문했다. 용감함이 한국어 실력 향상에 필수였단다.

시가코씨는 결혼이민여성에 대한 편견과 직접 대면하는 기사도 썼다.

“‘한국 신랑 여러명이 모이면 예쁜 외국인 신부와 50% 가격에 결혼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보고 기사화했던 기억이 나요.”

결혼이민여성의 한사람으로서 분노했다는 시가코씨는 취재 과정에서 아직도 다문화가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시가코씨는 일부의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다루는 언론의 행위에도 분노한다. 결혼이민여성과 다문화가정의 존엄성을 일방적으로 폄하하는 행태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이민여성의 한사람으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릴 수 있어 보람도 있고 그만큼의 책임감도 느낀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남다른 각오가 필요해요. 앞으로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싶은 이라면 이런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기사도 쓰고 싶어요.”

아직은 기사에 댓글이 없지만, 언젠가는 훈훈한 댓글도 달리길 기대한다는 시가코씨다.

세종〓이연경 기자 worl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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