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충신의 지조 간직한 호남 성리학 ‘본산’ 필암서원

입력 : 2020-02-26 00:00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5)충절의 사표, 김인후와 필암서원

율곡학파의 선구자격인 하서 김인후

뛰어난 학문·절개, 후대 칭송 줄이어 인종 요절에 관직 포기·후학 양성 힘써

그의 뜻 기려 사후 30년 서원 창건 고향 장성의 ‘붓바위’서 이름 유래
 


필암서원(사진)은 1590년 건립됐다. 주 제향인물은 하서 김인후(1510~1560년)이며, 호남 학맥의 본산으로서 으뜸가는 서원이다. 그런 만큼 호남사림 여론형성의 진원지로서 정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남 장성에 자리한 필암서원은 한국의 동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원 운동이 서남부지역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입증한다.

하서 김인후는 1540년 대과에 급제했다. 조선왕조 제12대 임금인 인종의 세자 시절 사부로서 서로 아끼고 신뢰하는 군신간에 깊은 인연을 맺었다. 인종이 임금이 되자 함께 어진 정치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참된 지치주의를 펼치려 했는데 8개월밖에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죽을 때까지 관직에 나가지 않고 임금을 위해 충성했다.

김인후는 인종 승하 이후 곧바로 낙향해 고향에서 서재를 짓고 학문연구와 제자양성에 힘썼다. 호남 성리학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수준을 높여 율곡학파의 학설이 정립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송시열은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다 갖춘 사람은 오직 김인후 한사람뿐이다”라고 칭송했다. 1796년(정조 20년) 문묘에 종향됐는데 이때 정조는 “동방의 주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문묘에 배향된 유일한 호남의 선비다.

‘필암’은 김인후의 고향인 황룡면 맥호리 맥동마을 입구에 자리한 붓바위(筆巖)에서 유래한다. 이 바위는 마치 모양이 붓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이후에 뛰어난 학자가 태어난다고 믿었는데 ‘필암’과 인연을 맺은 대학자가 바로 김인후였다. 김인후 사후 30년 만에 호남지역 유림들이 필암서원을 창건했으며 1597년 정유재란으로 서원이 소실됐다가 1624년 황룡면 필암리 증산동으로 이전해 다시 세웠다.

1659년(효종 10년) 필암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1672년 현재 위치인 황룡면 필암리로 옮겨 세워졌다. 필암리 증산동 일대가 지대가 낮아 수해를 당할 우려가 있다는 공론에 따라 바로 근처로 옮긴 것이다. 또한 사액서원답게 면모를 일신하고 규모를 늘릴 목적도 있었다.

필암서원은 대표적인 평지형 경관의 서원이다. 앞에는 가까이 문필천이 흐르고 들판 너머 멀리 안산인 월선봉이 보인다. 서원 앞에는 신위가 봉안된 신성한 장소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학교 나무를 상징하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정문에 해당하는 확연루가 있는데 이는 “군자의 학문은 확연해 크게 공정하다”는 뜻이다. 확연루에서 바라보는 넓게 트인 시야는 만물과 일체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필암서원은 기본적으로 ‘앞에 강당과 뒤편에 사묘(前堂後廟)’의 형식을 갖췄지만 사당인 우동사(佑東詞)가 강당과 같은 평지면에 있다. 우동사에는 중앙의 북쪽 벽에 김인후, 동쪽 벽에 양자징의 위패를 모신다.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문에 ‘천우아동(天佑我東)’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하늘의 도움으로 동방에 태어난 인물이 김인후 선생이다”라는 극찬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강당인 청절당은 다른 서원과 달리 입구의 문루를 향하지 않고 반대편 산 아래 사당을 보고 있다. 강당과 동·서재가 사당을 일상적으로 바라보도록 독특하게 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청절당의 좌우에는 수학하는 원생들이 거처하는 숭의재(서재)와 진덕재(동재)가 배치됐고 경장각이 마당 서쪽 가까이에 세워져 있다.

경장각(敬藏閣)은 ‘왕과 조상의 유물을 공경하여 소장하다’라는 의미로 이 건물 안에는 인종이 김인후에게 하사한 묵죽도의 판각이 소장돼 있다. 경장각의 편액은 정조 임금이 쓴 글씨다. 묵죽도의 대나무 그림은 인종이 그렸고 그 속에 김인후의 뜻을 기리는 화답의 시를 써 군신간에 오가는 감사의 뜻이 담겼다.

김인후는 생전 1600여수에 이르는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인종 사후에 쓴 사모곡이나 소쇄원 48영 등 유명한 시가 많이 있다. 백성의 삶의 애환을 담은 <농가를 슬퍼하다>(하서집 권8) 편은 ‘보리베기’ ‘콩심기’ ‘풀베기’ 등 가뭄으로 피폐해진 농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배용 교수는…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 ▲영산대학교 석좌교수 ▲<농민신문> 편집자문위원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 전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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