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농어촌상생기금출연 나서도록 장려책 필요”

입력 : 2020-02-19 00:00 수정 : 2020-02-19 23:43

21대 국회, 이것만은! (6)농어촌상생협력기금 활성화

매년 1000억씩 모금 목표 실제론 3년간 734억 불과

기업들 무관심에 흐지부지 농민, 정부·정치권 못 믿어

홍보 등 서비스 출연 허용 국민 대상 모금으로 전환

무역이득공유제도 검토를
 


2015년 11월3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앞두고 여·야·정은 긴급 회동을 했다. 농업계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비준동의안 처리에 앞서 농심을 달랠 방안부터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나온 카드가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하 상생기금)’이다. 여·야·정 합의서엔 FTA로 이득을 보는 기업들의 기부금으로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을 조성해 농민과 농촌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저조한 실적…신뢰문제로 비화=상생기금은 국회에서 입법화 과정을 거쳐 2017년부터 모금에 들어갔다. 그런데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했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따르면 17일 현재 조성액 누계는 734억4028만원이다. 목표대로라면 지금까지 3000억원 넘게 조성됐어야 하지만 실제 달성률은 25%에도 못 미친다. 2026년까지 1조원이 조성될 것으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농업계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정부와 정치권의 무책임한 태도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여·야·정이 합의서를 작성해 상생기금 조성을 약속해놓고도 정작 저조한 실적에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업계를 향한 약속이 지켜진 적 있나. 상생기금문제도 그렇고, 그때만 지나면 끝이다.” 지난해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포기 방침을 정하고 관련 대책을 발표했을 때 박행덕 당시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보였던 반응이다. 상생기금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농민들에겐 이처럼 정부와 정치권을 쉽게 믿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확산됐다.

농업계 안팎에선 선진국 농정으로 이행하기 위한 조건으로 농정 주체 사이의 교감과 신뢰를 꼽는다. 그런 점에서 상생기금문제를 풀기 위한 시도가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천 한국농축산연합회 사무총장은 “상생기금은 농업계가 부족한 돈을 채워달라고 조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농업계를 어느 정도의 파트너십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오히려 본질에 가깝다”고 했다.

◆서비스 출연 등 허용을=20대 국회는 대기업 관계자들을 국정감사장으로 불러 출연계획을 묻고, 현금 출연 외에 현물 출연이 가능하도록 길을 텄다. 정부가 상생기금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취한 조치를 반기마다 국회에 보고토록 하는 등 관련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금 조성실적이 보여주듯 제도 활성화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2017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부도 “기업의 출연을 강제할 수 없다”며 상생기금 모금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차기 국회는 정부와 협력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출연에 나설 수 있는 인센티브와 분위기 조성에 지혜를 모아달라는 게 농업계의 주문이다. 현물 출연에 이어 서비스 출연을 허용하자는 제안도 있다.

최영철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부회장은 “기업이 보유한 서비스 기능이나 상품을 농민들에게 무상 또는 저렴하게 제공해 상생효과를 낼 수 있다”며 “전문가들이 농업·농촌의 가치를 알리는 홍보물을 만들고 이를 TV·신문 등으로 전파하는 것도 그런 예”라고 했다.

상생기금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민간기업의 출연이 늘어야 하지만 수출에 주력하는 대기업 참여액은 67억여원으로 전체 모금액의 10%를 밑돈다. 발전회사 등 공기업이 출연한 650억여원도 종전엔 지역에 기탁했던 장학금 등을 전달창구만 상생기금으로 바꾼 경우가 많아 순증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진수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업이 소재지역에 상생기금을 지정기탁하는 것이 전체 농촌의 형평성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지역·용도 등의 비지정기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현행 기업 중심의 기금조성 방식을 전국민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할 만한 과제”라고 말했다.

상생기금은 2026년까지 운영한다. 목표금액을 못 채워도 기한이 되면 자동 소멸한다. 농업계는 FTA에 따른 관세 철폐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는 마당에 상생기금이 이름뿐인 제도로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농업인단체연합은 최근 총선 농정공약 요구사항을 통해 상생기금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조세 성격을 띤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경진 기자 hongk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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