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食)민지] 요즘 ‘소문난 음식’에 우리 먹거리 없네

입력 : 2020-01-01 00:00 수정 : 2020-01-13 10:54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는 아보카도·마라탕 등 이국적인 음식에 대한 사진과 글 수십만건이 올라와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흑당버블티,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 아보카도, 마라탕, 베트남 고수, 아스파라거스. 사진출처=인스타그램 등

#아보카도 #마라탕 #흑당버블티…

1980~2000년대초 태어난 ‘밀레니얼세대’ 먹거리 소비주도

이국적인 먹거리 선호 ‘뚜렷’ 외국산 소비 거부감 옅어져

‘신토불이 마케팅’ 안 통해 외국 음식에 우리 식재료 더하는 창조적 혁신에서 답 찾아야

우리농산물 가치 재발견 기회도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급변하고 있다. 국산이라고 무조건 애착을 갖지 않고 외국산이라고 배척하지도 않는다. 특히 최근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외국산 농축산물과 식품 등 선택의 지평을 급속히 넓혀가는 양상이다. 일명 ‘식(食)민지’ 현상을 짚어본다.



“‘초록이(아보카도)’,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빵과 달걀·쇠고기 어느 것과도 잘 어울려요.”

“마라탕에 푹 빠졌어요. 이젠 정기적으로 수혈(매운맛의 붉은 국물을 섭취하는 것을 뜻함)해야 할 정돕니다.”

SNS 인스타그램에는 아보카도·마라탕의 맛과 먹는 방법을 소개하는 사진과 글이 수십만건이나 올라와 있다. 사진을 클릭해 주고받은 대화를 보면 얼마나 많은 이가 색다른 맛에 매료됐는지 실감하게 된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멕시코 원산 아보카도와 중국 쓰촨지방에서 많이 먹는 마라탕은 이제 흔한 식재료와 음식이 됐다. 고수·아스파라거스,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와 흑당버블티 등도 마찬가지다.

SNS 공간에선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이 더이상 힘을 얻지 못한다. 밀레니얼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먹거리 소비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식(食)민지’라 일컫는다. 그야말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트렌드는 2020년 들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맛 취향의 다양화=오랫동안 국경은 농축산물 소비에서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이 기준으로 소비자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인 시대가 됐다. 애국심보다 맛에 대한 취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색다른 맛을 추구하는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인스타그램·페이스북·유튜브 등에서 보여주는 게 하나의 풍속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병서 농촌진흥청 농산업경영과 농업연구관은 “최근 밀레니얼세대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연령층에서 전통이나 신토불이에 기반한 맛을 찾는 경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맛 찾아 3만리=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것도 국내에서 색다른 먹거리를 접할 기회가 늘어난 이유다. 결혼이민여성과 외국인 근로자 유입 등으로 동남아시아나 중동·아프리카 등지에서 먹는 에스닉푸드(특정 민족이 즐겨 먹는 음식)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내국인이 해외로 가는 기회도 한층 많아졌다. 해외여행 등으로 다른 문화를 접하는 기회가 늘면서 이국적인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나 심리적 장벽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안전에 대한 문제만 없다면 이젠 해외 어디든 찾아가 새로운 맛을 접하는 모험을 즐기는 게 현실”이라며 “이것은 맛의 글로벌리즘”이라고 진단했다.



◆맛의 융합과 재발견=SNS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이 바로 맛의 융합이다. 최근 유행하는 음식을 보면 국내 농축산물에 외국산 원료를 더해 독특한 맛을 내는 게 많다. 떡볶이에 치즈를 더하는 것은 예전 일이 됐다.

박종서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장은 “이젠 우리의 고유한 맛을 고집하기가 더이상 어렵게 됐다”며 “외국 음식의 장점을 우리 음식에 융합하는 것이야말로 맛의 창조이고 진화”라고 설명했다. 즉 고구마에 아보카도를 더하고, 김치를 마라탕에 넣는 등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외국의 맛을 접하는 게 우리 먹거리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접하면서 우리 흑돈 <난축맛돈>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칠레산 포도가 들어오면서 껍질째 먹는 <샤인머스캣>을 도입해 위기를 극복한 게 그 예다.

문정훈 푸드비즈랩 소장(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은 “외국에서 슈퍼푸드로 각광받는 귀리 등 곡물의 가치가 최근 국내에서 재조명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라면서 “외국 먹거리가 몰려오는 것을 우리 맛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기회로 삼는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홍 기자 sigmaxp@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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