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종자 한알한알에 담긴 이야기 싹 틔우다

입력 : 2019-11-13 00:00 수정 : 2019-11-14 00:04

[농촌 Zoom 人] 한국토종씨앗박물관 연 강희진씨 <충남 예산>

농부로 살다 2016년 박물관 개관 보관중인 1만여종 중 1300종 전시

종자마다 키워낸 이 사연 담겨 눈길 토종씨앗 직접 채종…농가 보급도
 


“토종씨앗의 모양과 색깔이 정말 다양하죠? 도시 사람들이 와서 보면 놀라곤 해요. 그런데 나는 좀 달라요. 평생 농사지었으니 평생 봐온 게 씨앗이거든. 새로울 게 없죠. 오히려 이 토종씨앗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해요.”

충남 예산군 대술면에서 한국토종씨앗박물관을 운영하는 강희진 관장(63). 스스로 벼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던 농민이었다. 10대에 농사일을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그야말로 평생 농사만 짓고 사는 주변 어르신들을 보면서 ‘농민도 때가 되면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환갑 전에 은퇴를 결행했다. 키우던 소 다 팔아서 빚을 정리하고 남은 걸로 그동안 농사짓느라 못했던 일을 하면서 살기로 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강 관장은 그 나름대로.

그런데 아내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 아내는 토종씨앗을 모으고 키워서 나누는 씨앗도서관을 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공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창고로 쓰던 공간을 개조해 나눔할 장소를 마련하고 한쪽엔 전시장도 만들어줬죠. 그러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 온갖 박물관이 다 있는데 왜 토종씨앗박물관은 없을까. 그러면 내가 만들어볼까’ 하고요.”

가지고 있는 토종씨앗은 충분했다. 게다가 그가 개인적으로 소장한 복장유물 가운데 60가지의 곡물씨앗이 있었다. 어렵게 얻은 탄화미도 몇종 있었다. 박물관을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만든 것이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식으로 박물관 등록도 했다.

“처음엔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미 농업유전자원센터에 온갖 씨앗이 다 보관돼 있는데 새삼스레 무슨 씨앗박물관이냐고요.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유전자 보존이 아니라 토종씨앗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죠.”

실제로 그가 하는 일은 그저 새로운 씨앗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와 역사가 담긴 토종씨앗을 모으고 기록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오이 한 품종이 있다면 종자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난해 채종한 씨와 올해 채종한 씨는 같은 씨지요. 그런데 박물관 입장에서는 달라요. 왜냐하면 그 씨앗에 얽힌 이야기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강 관장이 모으는 씨앗은 그냥 씨앗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농부가 어떻게 농사를 지었던 씨앗’이다. 사람의 이야기가, 농민의 역사가 담긴 씨앗인 것이다. 박물관을 만들어놓고 보니 여기저기서 씨앗을 보내오는 사람이 늘었지만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씨앗을 정중히 거절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한 어르신이 전화를 걸어 감참외씨를 가지고 있냐는 거예요. 감참외는 겉은 파랗고 속은 감처럼 붉은색을 띠는 참외인데 ‘없습니다.’ 그랬죠. ‘가지고 계시면 좀 나눠주십시오.’ 그랬더니 조건을 거시더라고요. ‘너희가 가지고 있는 씨앗 중에 귀한 것 세개를 가지고 오면 주겠다’고요.”

강 관장은 고민했다. ‘뭐가 귀한 씨앗일까. 사람마다 귀한 것이 다를 텐데, 뭘 가져가야 어르신 마음에 들까.’ 고민 끝에 토종볍씨 중 <은조>를 가져가기로 했다. 구하기 힘든 씨앗인 데다 은색을 띤 까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워서다.

“어르신이 펑펑 우시더라고요. 1·4 후퇴 때 아버지랑 피난 온 이북분이신데, 아버지가 그 와중에도 온갖 씨앗을 챙겨오셔서 남쪽에서 농사를 이어가셨대요. 그중 하나가 <은조>였는데 당신은 그걸 이어서 키우지도 못하고 씨앗도 잃어버려서 항상 죄송한 마음이 컸다고요.”

강 관장이 얻어온 감참외 씨앗은 이 어르신의 이야기와 함께 보관됐다. 이렇게 박물관에 보관된 씨앗은 모두 1만5000여종. 전시장에 전시된 1300여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냉동고에 보관돼 있다. 토종씨앗을 모으고 박물관을 관리하는 것 말고도 강 관장은 텃밭에 토종씨앗을 뿌리고 키워서 채종한 뒤 씨앗 나눔을 한다. 우리의 토종이 좀더 많이 재배돼 더 많은 사람들이 토종 먹을거리를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서 박물관이 오랫동안 더 많은 씨앗 이야기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예산=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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