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WTO 차기협상부터 ‘개도국 우대’ 없어…농업 직격탄

입력 : 2019-11-01 00:00 수정 : 2019-11-02 23:52
‘WTO 개도국 지위유지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관계자 등이 10월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포기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답으로 본 WTO 개도국 지위포기

위상 변화·미국 압박에 결정 각종 개도국 특혜 못 받아

관세·농업보조금 대폭 감축 쌀 등 핵심품목 피해 불가피 값싼 중국산 공세 심화 우려

공익형 직불제·소득 안정책 등 농민단체, 정부에 6가지 요구

정부 “협의체 꾸려 대책 논의”
 



최근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개도국 지위문제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다. 특히 농업분야에서는 개도국과 선진국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개도국 지위포기가 어떤 의미인지, 한국 농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짚어본다.



문 :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답 : 우리나라는 1995년 WTO 출범 이후 줄곧 유지했던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기로 했다.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해오면서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미국의 요구가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WB)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 이상인 국가라는 4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하면 개도국 지위를 인정하지 말자고 했다. 전세계 개도국 중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문 : 미국은 왜 개도국 지위포기를 요구했나.

답 :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이다. 미국은 중국·인도 등 경제규모가 상당한 나라들이 스스로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WTO 체제에서 개도국으로 분류되면 자국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높게 매길 수 있고, 정부 보조금을 통해 자국산업을 육성할 수도 있다. 중국도 이런 개도국 지위를 활용해 자국산업을 보호해왔다. 하지만 중국이 누리는 혜택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문 : 한국 농업에 미칠 영향은.

답 : 정부는 당장 농업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강조한다. 정부 설명을 그대로 믿더라도 언젠가 WTO 차기협상이 타결되면 농업이 직격탄을 맞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WTO 협정 내 개도국 우대조항은 150개에 달한다. 특히 농업에서는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에 따라 의무 차이가 매우 크다. 선진국으로 간주되면 관세와 농업보조금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 높은 관세를 매겨 자국 농산물시장을 보호하거나 보조금을 통해 국내산 농산물가격을 지지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문 : 가장 타격 받을 농산물은.

답 : 한국 농업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고율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핵심품목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쌀이 대표적이다. 동시다발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속에서도 쌀만큼은 예외를 인정받아 513%라는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쌀을 민감품목으로 지정해 보호하더라도 관세율은 393%로 조정된다. 일반품목일 경우 관세율은 154%까지 뚝 떨어진다. 2008년 타결 직전까지 갔던 WTO 농업협상의 관세감축프로그램을 적용한 수치다. 양념채소류도 마찬가지다. 고추 관세는 270%에서 207%로 낮아진다. 값싼 중국산 농산물의 국내시장 잠식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문 : 개도국 지위포기로 우리는 무엇을 얻나.

답 :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자동차 관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 고율관세 부과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미국은 이달 13일까지 수입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관세 부과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결국 정부는 언제 있을지 모를 WTO 차기협상에서의 농업보호보다는 당장 미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는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 농업을 희생양 삼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문 : 농업계는 무엇을 요구하나.

답 : 농민단체는 ▲농업·농촌에 대한 안정적인 재정 지원 ▲공익형 직불제 도입 ▲국내산 농산물 수요확대 ▲농가소득 안정대책 ▲청년·후계농 육성대책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 설치 등 6가지로 요구사항을 정리해 정부에 전달했다.

특히 관건으로 꼽히는 건 농업예산 확대다. 농민단체는 국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농업예산 비율이 4% 이상 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공익형 직불제 도입을 위해서는 적어도 3조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부족분을 정부 출연으로 채워달라고 요청했다.



문 :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답 : 정부는 이번 결정에 따른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농민의 소득·경영 안정 지원 ▲국내 농산물 수요기반 확대와 수급조절기능 강화 ▲청년·후계농 육성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다. 조만간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꾸려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규원 기자 o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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