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부터 운반·입고·선별·포장까지…비지땀 흘리며 ‘가지가지’ 작업

입력 : 2019-09-02 00:00 수정 : 2019-09-03 14:38
기자(왼쪽)가 김홍도 경기 여주 가남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장과 함께 가지를 선별하고 있다.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유건연기자가 간다 (28) 여주 가남농협 APC 가지 선별장

공선출하회원 농가서 수확작업 숙련 노동자의 반도 못 채워 ‘민망’

10분거리 APC에 싣고 간 상자 두개씩 팰릿에 옮기느라 땀 범벅

특·상·보통 등 복잡한 기준에 맞춰 일일이 손으로 깐깐하게 선별작업

베테랑 선별사 “정성껏 선별한 가지 시장서 좋은 값 받으면 큰 보람”

여주 가지 브랜드 ‘금보라’ 이름 달고 도매시장으로 향하는 가지들 보니

자식 떠나보내는 부모 심정 느껴져
 


낯선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잠을 설쳤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전날 가졌던 설렘도 있었다. 기자가 일터로 잡은 경기 여주는 국내 최대 가지 주산지다. 지난해 기준 전국 가지 재배면적은 789㏊, 농가수는 9441가구다. 이중 여주 가지의 재배규모는 104㏊, 300여농가에 이른다. 생산량과 시장 출하량을 가늠할 수 있는 도매시장 점유율은 63%에 이른다.

가지 주산지답게 여주엔 가지를 공동 선별·출하하는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가 있다. 가남농협(조합장 김지현) APC 가지 선별장이 그곳이다. 가남농협이 지난해 3월 설립해 운영 중에 있다. 농가에서 생산한 가지를 선별·포장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보낸 후 정산까지 한다. 공선출하회에는 35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가남농협 APC는 준공식 때부터 꾸준히 취재했다. 하지만 보다 세밀하게 속살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기로 했다. 가지 생산농가와 선별 종사자들의 속내도 듣고 싶었다. 그런 만큼 ‘몸치인 내가 무더위를 견디고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함께 기대감도 자못 컸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14일 오전 7시45분, 가남농협 APC 가지 선별장 인근에 도착했다. 한낮의 푹푹 찌는 기온을 예고하듯 이른 아침 햇살은 벌써부터 뜨끈했다.

 

박상선씨 농장에서 가지를 수확하는 모습.


◆가지로 희망 일구는 청년농부=가남농협 APC 가지 선별장으로 가기에 앞서 농가를 찾아 수확해보기로 했다. 박상선씨(38·가남읍 하귀리)는 3년 전 귀농해 부모님이 농사짓던 땅 9917㎡(3000평)에 시설하우스를 짓고 가지 재배를 시작했다. 가지 공선출하회엔 시작 때부터 참여했다.

오전 8시10분. 기온은 벌써 30℃까지 육박했다. 시설하우스에서 할 수확작업이 내심 걱정됐다. 박씨의 가르침에 따라 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 4명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적당하게 자란 가지를 골라 꼭지를 0.5㎝ 정도 남기고 자른 후 노란색 컨테이너 상자에 담는 작업이었다. 당장 적당한 크기의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진도는 더뎠다. 옆줄 외국인 근로자는 수확과 순지르기 작업을 동시에 했지만 기자보다 속도는 두배 이상 빨랐다.

“숙련 노동자의 경우 10~15분이면 30㎏ 정도 들어가는 컨테이너 상자를 다 채운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기자의 상자는 30분이 지나도 차지 않았다. 잎 뒷면의 작은 솜털가시도 작업을 방해했다.

한시간가량 지나자 집중력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박씨는 “그만하시죠”라며 작업 중단을 지시했다. 이날 박씨는 컨테이너 9개 분량의 가지를 수확했다. 여름철 고온이라 수확량이 크게 떨어진 탓이었다.

그는 “가지를 수확해 APC에 갖다주기만 하면 된다. 그만큼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고품질 생산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다”고 공선출하회의 장점을 똑 부러지게 말했다.

 


◆선별의 달인…농심으로 구슬땀=박씨와 함께 차로 10여분을 달려 가남농협 APC에 닿았다. 입고장엔 벌써 2대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김홍도 가남농협 APC 센터장은 분주하게 지게차로 컨테이너 상자를 옮겼다. 김 센터장이 지게차를 이용해 가로·세로 각각 1.1m 규격의 팰릿을 트럭 높이만큼 올리면, 기자는 트럭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 상자를 팰릿으로 옮겼다.

한개당 30㎏ 안팎의 가지가 담긴 컨테이너 상자 두개를 동시에 팰릿에 올리고 내리는 노동은 만만치 않았다. 바닥에 놓인 상자를 선별라인에 하나씩 올려놓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했다. 입고장은 건물 안에 있지만 냉난방시설이 없었다. 한시간가량 작업하니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고 티셔츠는 흠뻑 젖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APC의 핵심시설인 선별장으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단순하지만 고된 노동이 반복되면서 지쳐갈 때쯤 구세주가 나타났다. 김 센터장은 기자를 ‘출입금지’ 구역으로 안내했다. 선별장이었다. 에어샤워를 마치자 문이 열렸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기자를 맞았다. 문 하나를 두고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환희도 잠시, 김 센터장으로부터 깐깐하고 복잡한 선별기준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가지 선별은 선별사가 모두 수작업으로 한다. 길쭉하고 모양이 다양한 가지 특성상 기계 선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문선별사는 경력 4년차 이상의 베테랑들이었다.

가지는 길이 및 굵기, 색택, 모양, 상처 여부 등에 따라 특·상·보통으로 분류한다. 길이 22㎝ 안팎에 적당한 굵기, 짙은 보라색에 반질반질 윤기가 나며 일자로 곧은 것이 ‘특’이다. ‘특’ 가지는 8㎏들이 상자에 50개 정도가 담긴다.

가지를 선별해 상자에 담는 것도 세밀한 기술이 필요했다. 상자를 두 부분으로 나눠 가지가 마주보게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김 센터장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가지와 가지 사이의 공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면서 “포장기술도 경락값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품과 상품 의 가격차이가 4000~5000원 나는 경우도 있다”면서 선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설명을 들을 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컨테이너에 담겨 있는 가지를 보니 막막했다. 손으로 만질 수조차 없었다.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김 센터장은 영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눈칫밥으로 배가 불러올 때쯤 낮 12시가 됐다. 꿀맛 같은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식사를 마친 선별사와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4년차인 조성자 선별사(58)는 “비상품과도 많고 크기도 제각각인 7~8월은 선별작업하기가 가장 힘든 시기”라면서 “게다가 가지값이 폭락할 때면 일할 의욕마저 없어 더욱 힘들다”고 했다. 그는 “농가가 고품질 가지를 생산해 입고하면 그리 힘들지 않게 선별할 수 있고 기분도 좋다”면서 “정성껏 선별한 가지가 도매시장에서 좋은 값을 받으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건강에 좋은 가지를 소비자들이 더 많이 드시면 좋겠다”며 수줍게 웃는 조 선별사의 미소 속에서 진한 ‘농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입고장에서 가지가 담긴 컨테이너 상자를 옮기고 있다.


◆자식 같은 ‘금보라’ 가지 떠나보내다=달콤한 점심시간도 잠시, 오후작업이 시작됐다. 서툰 솜씨 때문에 선별장에서 내쫓긴(?) 기자는 포장작업을 마친 8㎏들이 상자를 스카치테이프로 봉하는 테이핑작업에 투입됐다. 상자를 닫고 테이프로 붙이는 단순작업이었지만 이 또한 ‘손치’인 기자에겐 힘든 일이었다. 비뚤비뚤한 테이핑작업이 계속되자 김 센터장의 시범과 재교육이 이어졌다.

테이핑한 상자는 규격 팰릿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90상자를 정사각형으로 쌓은 후 비닐로 감싸는 래핑까지 하면 APC에서의 작업은 끝이 난다. 기자는 이날 850상자를 작업하는 데 참여했다.

깐깐하면서도 정성들인 선별과 포장작업을 마친 가지만이 여주 가지 브랜드인 <금보라> 배지를 달 수 있다.

오후 4시. 래핑한 팰릿을 가지런히 적재한 5t 트럭이 서울 가락시장을 향해 떠나면서 이날 작업은 마무리됐다.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자식을 떠나보내는 감상에 잠시 젖었다. 좋은 값이 나와 농부와 작업에 투입된 모든 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그려봤다. 나른한 행복감으로 피로가 말끔히 씻겨나갔다.

여주=유건연, 사진=김남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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