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출하까지 180일…품질 좋은 돼지, 이렇게 키우면 되지!

입력 : 2019-08-26 00:00
돈사 내부를 기자가 직접 소독하고 있다.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박하늘 기자가 간다(27) 양돈장

철저한 방역절차 거쳐 농장에 입성 철책을 확인하는 군인의 마음으로 울타리 돌며 멧돼지 침입여부 살펴

땀 뻘뻘 흘리며 새끼돼지 사료 운반 경계하던 돼지들 이내 밥 달라 보채

돼지 몸속 냄새 줄이는 미생물 먹이고 돈사 내 남아 있는 분뇨 서둘러 청소

퇴비사 약품분무시설 사각지대 찾아 직접 분사…축산냄새 크게 줄여줘

출하 앞둔 비육돈 표시로 일과 종료
 



매년 양적 성장을 거듭해온 양돈업이 근래 복합위기에 직면했다. 바깥에선 값싼 수입육의 공세에 더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같은 각종 질병이 국내 양돈산업을 위협하고 있고, 안으론 축산냄새 관련 민원과 정부의 규제가 더욱 심해지는 실정이다. 게다가 지난해말부터 유례없는 가격약세가 이어지면서 농가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양돈농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최근 경북 고령의 한 양돈장을 찾아 양돈농가의 어려움을 몸소 느껴봤다.



일상이 된 방역관리

양돈장 섭외부터가 큰 과제였다. 2010~2011년 구제역 파동 이후 양돈장에 외부인을 들이는 일은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농장주라도 “농장을 방문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방역 때문에 곤란하다”라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거절당하면서도 한편으론 믿음이 갔다. 차단방역에 대한 양돈농가의 의식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문 전 다른 농장을 다녀오지 않고 개인 방역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이달 중순 고령의 한 농장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오전 6시를 조금 앞둔 시각, 양돈장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차량소독시설과 개인소독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소독시설을 통과하기 전 상·하의와 모자가 하나로 붙어 있는 방역복으로 갈아입었다. 방역신발까지 신고보니 과연 양돈장을 가는 것인지, 최첨단 반도체공장을 가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소독시설에는 일지를 비치해 농장을 드나들 때마다 반드시 기록하게 돼 있었다. 이 절차엔 농장주나 노동자는 물론 잠깐 농장에 들리는 정수기 점검원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었다.

첫 업무로 농장 외부를 점검하는 일이 주어졌다. 울타리를 직접 만지며 간밤에 야생동물이 침입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특히 야생 멧돼지는 구제역 등 각종 질병을 옮기는 주범이기에 이들이 농장에 넘어오지 못하도록 매일 농장을 점검하는 일은 필수다. 최전방에서 철책을 확인하는 군인의 심정으로 꼼꼼히 점검했다. 방역에 빈틈이 있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침입 흔적은 없었다.

 

40~60일령 새끼돼지 1000여마리가 있는 자돈사에서 사료급여기에 사료를 채우고 있다.

사료 급여부터 분뇨 청소까지 “바쁘다 바빠”

사료급여기를 채우는 것으로 본격적인 돈사 내에서의 일과가 시작됐다. 기자는 40~60일령 새끼돼지 1000여마리가 있는 자돈사를 맡았다. ‘새끼돼지라 사료도 덜 먹을 테니 수월하겠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무게가 25㎏에 달하는 사료 수십포대를 쉴 새 없이 날라 각 사료급여기에 채워 넣어야 했다. 돼지들은 처음엔 기자를 경계했지만 이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발에 계속 치대며 보채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꼬박 한시간 동안 사료를 채우고 나서야 작업이 끝났다. 마지막 사료포대를 내려놓기 무섭게 농장의 현장 책임자인 이영훈 차장이 투명한 갈색 액체가 들어 있는 주전자를 기자에게 건넸다.

“이제 미생물 희석액을 급여할 차롑니다. 분뇨처리단계에서 냄새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돼지의 몸속에서 냄새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돼지의 장 속으로 유용미생물이 들어가면 장 활동이 활발해져 소화가 잘되고 배출된 분뇨의 냄새도 덜 하단다. 사료 급여와 마찬가지로 각 케이지를 돌며 미생물 희석액을 급여했다.

돼지에게 먹고 마시는 것을 줬으니 이제는 분뇨를 청소할 차례다. 이 돈사는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분뇨가 배출되면 바로 아래 슬러리 피트(분뇨저장소)로 떨어지는 구조였다. 피트에 저장된 분뇨가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퇴비장으로 자동 이동된다.

분뇨의 분해를 돕는 미생물 용액을 각 돈사에 분사했다. 그러고도 남아 있는 ‘왕건이’는 직접 퍼 담아 퇴비사로 옮겼다. “똥을 빨리 치우지 않으면 돼지들이 밟고 미끄러질 수 있어 위험하고 위생에도 좋지 않으니 얼른 작업을 해줘야 합니다!” 잠시 허리를 펴고 스트레칭을 할 찰나에 떨어진 불호령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새끼돼지의 송곳니를 뽑고 꼬리를 자르는 날이었다. 농장주인 이기홍 대한한돈협회 부회장은 “송곳니를 발치해야 어미젖을 빨 때 젖에 상처가 적게 난다”면서 “또 꼬리를 자르지 않으면 새끼돼지들끼리 서로 꼬리를 물어뜯어 그 상처 부위로 세균이 침투하고 질병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얼핏 보면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돼지들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작업은 한 어미를 둔 새끼돼지 10여마리를 한꺼번에 꺼내 조치를 취한 뒤 다음 케이지로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작업은 자칫 돼지와 사람 모두 다칠 수 있기에 기자는 새끼돼지를 케이지에서 꺼내는 일만 맡았다.

오른손으로 새끼돼지의 한쪽 뒷다리를 잡고 왼손으로는 배를 받쳐서 꺼내면 된단다. 말은 쉽지만 자꾸 도망 다니는 새끼돼지를 잡기 위해 한바탕 추격전을 벌여야 했다.

 

송곳니를 뽑고 꼬리를 자르기 위해 케이지에서 새끼돼지를 꺼내 상자로 옮기고 있다.


무더위·축산냄새 물렀거라

오후에는 쿨링패드(물을 증발시켜 온도를 낮추는 장치) 점검작업에 들어갔다. 농장주인 이 부회장은 몇년 전 심한 폭염으로 돼지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쿨링패드를 설치했단다. 쿨링패드에 낀 이끼를 제거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일일이 확인했다. 바깥 온도가 35℃까지 올랐지만 사람보다 더 더워할 돼지들을 위해 묵묵히 작업을 이어갔다.

퇴비사 주변에는 약품 안개분무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자동으로 약품이 분무돼 축산냄새가 농장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다. 농장 주변을 돌면서 분무시설이 미치지 않는 곳엔 직접 분무기로 약품을 분사했다. 그제야 생각했던 것보다 농장의 축산냄새가 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장주인 이 부회장은 “실제로 이 시설을 도입한 뒤 축산냄새와 관련한 민원이 상당히 줄었다”고 말했다.

115㎏ 이상 돼 보이는 출하를 앞둔 비육돈의 등에는 마커로 표시를 한다.


비육돈사로 이동해 출하를 앞둔 비육돈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일과가 마무리됐다. 어림잡아 115㎏ 이상 돼 보이는 돼지의 등에 마커로 표시하는 일이다. 돼지들이 요리조리 도망치는 탓에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돼지는 태어나 출하되기까지 180여일이 걸린다. 수많은 질병과 더위를 이겨내고 규격돈으로 잘 자라준 돼지를 보며 고맙고 벅찬 마음이 들었다.

“자식처럼 키웠는데 출하를 앞둔 돼지를 보면 당연히 섭섭하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국민에게 단백질을 공급해야만 합니다. 우리 농민은 여기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질병, 축산냄새 그리고 더위와 싸우면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 농장주의 투박한 목소리가 자꾸만 마음속을 울렸다.

고령=박하늘, 사진=김병진 기자 sky@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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