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땡볕 아래 고랭지배추 작황 조사…숫자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온 하루

입력 : 2019-07-29 00:00
기자(왼쪽)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 산지기동반의 신인철 연구원이 배추 작황을 점검하고 있다.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함규원 기자가 간다 (24)농경연 농업관측본부 산지기동반

배추·무 등 주요 고랭지채소 날씨 따라 작황 크게 달라져

농경연, 긴급대처 위해 7~9월 산지상황실 운영

매일 포전 돌며 밭 상태 관찰…여러 사람과 대면조사도 중요

인접 동네여도 작황 다른 경우 빈번 “나무 아닌 숲 봐야”

산지 워낙 넓고 밭 곳곳에 산재…점심 거르는 경우도 많아

산지정보, ‘관측월보’ 기초 자료…수급안정 위해 ‘불철주야’
 


고랭지채소는 날씨에 따라 작황이 크게 좌우돼 가격 등락폭이 다른 농산물보다 훨씬 크다. 이에 농업관측을 담당하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고랭지채소 수급안정을 위해 ‘고랭지채소 농업관측기동반 산지상황실’을 운영한다. 배추·무·양배추·당근·감자 등 주요 고랭지채소의 산지조사를 담당하는 산지기동반을 꾸리고 있는 것이다. 산지기동반은 7월부터 9월까지 석달 동안 강원지역 산지상황실로 삶터를 옮겨 상주하고, 매일 고랭지채소 주산지를 돌며 조사업무를 수행한다. 숨 막히는 불볕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의 초입, 대표적인 고랭지배추 주산지로 꼽히는 강원 삼척에서 배추 산지기동반과 하루를 함께했다.



고랭지배추 주산지로 향하기 며칠 전인 이달 중순, 일기예보를 보니 강원지역 비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오면 배추 작황을 제대로 점검할 수 있을까?’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하나?’ 온갖 걱정에 휩싸였다. 다행스럽게도 체험일 하루 전까지도 오락가락하던 빗줄기는 점차 약해져 17일에는 말끔히 그쳤다. 약속한 대로 오전 9시께 강원 평창에 있는 진부역에 나갔더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 엽근채소관측팀에서 배추를 담당하는 김다정 연구원이 반갑게 맞아줬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농경연 농업관측상황실에서 근무하는 김 연구원은 월 1~2회 출장형태로 산지상황을 살피고 있다. 오늘 하루를 함께할 배추 산지기동반에서 활동하는 신인철 연구원의 얼굴도 보였다.

“오늘은 삼척시 하장면을 돌면서 배추 작황을 살펴볼 겁니다. 하장면은 면적이 넓어서 빨리빨리 움직여야 해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신 연구원은 자동차 시동을 켜고 곧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장면에 미리 정해놓은 관측 포전은 대략 10군데. 그렇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포전을 둘러본다고 한다. 여기저기 산재한 배추밭을 찾아 마을 어귀에 숨어 있는 곳까지 찾아다닐 거란다. 그래야 관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달리다보니 하장면 토산리 인근 도로 근처에 있는 배추밭에서 수확작업에 여념이 없는 인부 몇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신 연구원은 자연스럽게 차를 멈춰 세웠다. 작황은 실제로 배추밭의 상태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파악하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신 연구원의 설명이다.

“올해 작황은 어떤가요?”라는 신 연구원의 질문에 배추 수확작업 지시를 하던 작업반장은 “작황이요? 안 좋아요”라고 잘라 말했다. 신 연구원은 다시 구체적으로 질문을 꺼냈다.

“5t 트럭을 가득 채우면 1000망이 들어가잖아요. 올해는 몇평에서 트럭 한차를 채우셨어요?”

“그건 대중이 없지. 좋으면 300평(10a)으로도 한차 금방 채우고, 아니면 500평, 600평이죠.”

“그럼 이 밭에서는 몇백평꼴로 한차를 채우셨나요?”

“이 밭이요? 500평, 600평은 해야 채우죠. 이거 봐요, 다 버렸잖아요.”

그러더니 배추밭을 가리키며 “바이러스도 있고 꿀통도 있고 다 못 쓰는 배추들이에요”라고 했다. 신 연구원도 “보통 400평 기준으로 한차를 잡는다”면서 “500~600평이면 작황이 나쁜 편”이라고 설명했다. 5t 트럭으로 작황을 파악하는 이유는 현장에서 생산량을 바로 알 수 있는 단위이기 때문이다. 한망이 보통 10㎏이니 1000망을 싣는 5t 트럭 한차라면 배추 10t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배추 수확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작황을 조사하는 모습.


오전 11시를 막 넘길 무렵 하장면 장전리에서 만난 유승우 삼척농협 과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황이 아주 좋다는 것. 유 과장은 “한눈에 보기에도 배추가 고르게 잘됐다”며 “올해는 아직까진 무더위도 큰비도 없어서 무름병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전리에서는 350평 정도로도 5t 트럭 한차가 되고, 작황이 더 좋은 곳에선 300평에서도 한차가 나왔다는 것이다. 신 연구원은 “이렇게 인접한 동네여도 작황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밭을 돌아봐야 한다”면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 이번엔 역둔리로 이동하니 마을 초입부터 배추밭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차를 세우고 해발 800m인 역둔리 배추밭 꼭대기로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쳤다. 배추 작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면 이렇게 높은 곳으로 올라와야 한다. 작황이 좋으면 초록빛 배추들이 오와 열을 맞춰 바둑판처럼 네모반듯하게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역둔리의 배추가 바로 이렇게 예쁘게 줄을 맞춰 자라고 있었다. 병해를 입어 밭이 군데군데 비어 있는 ‘층발이’도 거의 없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라’는 설명대로였다.

유승우 강원 삼척농협 과장(오른쪽)이 기자와 김다정 농경연 연구원(가운데)에게 배추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역둔리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이강신씨(73)도 “배추 작황은 올해가 최고”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대전리에서 만난 작업반장 이경희씨(57)도 “거의 300평에서 한차가 나왔고, 못 쓰는 배추는 10% 정도밖에 안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작황이 좋다고 해서 앞으로도 작황이 좋다는 보장은 없다. 갑자기 폭염이 오고 소나기가 쏟아지면 하루아침에도 농사를 망칠 수 있는 게 배추이기 때문이다. 배추의 생육기가 60일 정도인데 배추의 인생을 사람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하루 이틀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라는 게 신 연구원의 얘기다.

“올해 봄배추 관측을 할 때 충남 아산에 갔는데 작황이 정말 안 좋았어요. 70~80%가 꿀통이라서 출하를 못하고 거의 다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한 농민이 제 앞에서 서럽게 우시더라고요. 제가 조금 더 관측을 열심히 하고 더 많이 보고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으면 그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 연구원의 휴대전화 지도에는 조사했던 곳과 조사해야 할 곳을 점으로 표시한 게 빼곡하다. 산지가 워낙 넓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보니 점심도 거르고 운전대를 잡는 날도 많다고 한다. 관측정보는 매일매일 정리해 농경연 농업관측본부에 보고한다. 이렇게 모인 산지정보는 농경연의 ‘관측월보’를 작성하는 기초 자료가 된다.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앉아 읽던 숫자 하나하나를 새롭게 보게 된 하루였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예측은 할 수 있다. 농민을 비롯한 많은 농업 관련 주체들이 농업관측을 활용해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바란다.

삼척=함규원, 사진=김병진 기자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