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축형’ 사과수형 도입 이탈리아…작업 ‘편리’ 과실 ‘고품질’

입력 : 2019-07-17 00:00
축이 10개 이상인 다축형 사과나무의 모습, 하늘을 향해 위로 곧게 뻗은 축 하나하나가 과실을 맺는 결과지다.

창간 55주년 기획-세계 선진농법 현장을 가다 (4)‘다축형’ 사과수형 도입 선도하는 이탈리아

위로 뻗은 원줄기 2개 이상…2·3·4·8·10축형 등 ‘다양’ 농장환경에 맞게 선택 가능

축 많을수록 높이 낮아지고 동일면적 식재 나무수 줄어

모든 원줄기에 열매 달려 생산량은 ‘방추형’과 비슷

자람새 단순·평면형 구조 가지치기 등 작업 편해져

상하부 햇빛 골고루 받아 과실 착색 좋고 당도 높아져

배나무에도 적용 가능할 듯
 



과수 재배에서 ‘수형’은 농사의 난이도를 좌우한다. 나무의 높이나 너비, 그리고 가지 자람새에 따라 작업자의 동선과 움직임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수농가들은 꽃이 필 때부터 과실을 딸 때까지 가지치기(전정)·약치기·꽃솎기·열매솎기·수확 등 나무와 씨름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수형은 과실의 품질도 좌우한다. 무성한 가지와 잎에 가려 햇빛을 제대로 못 받은 과실은 맛이 떨어지지만 햇빛을 고루 받은 과실은 절로 당도가 높아져서다.

생산량과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가급적 노동력을 적게 투입할 수 있는 수형이 개발되길 농민들이 목매게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수형은 이러한 수요에 발맞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전세계적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수형은 무엇일까?

방추형에서 벗어나 ‘다축형’이라는 새로운 사과수형을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이탈리아를 찾았다. 국내 사과수형은 1970년대 왜성대목과 함께 도입된 방추형이 세장·세형·키큰방추형으로 변형되고는 있지만, 큰 틀에선 아직까지 방추형에 머무르고 있다.

 


다축형을 도입한 과수원에서 마주한 사과나무는 마치 벽걸이 텔레비전(TV) 같았다. 정면에서 볼 땐 옆으로 넓게 펼쳐졌지만 옆에서 보면 폭이 굉장히 얇아서다. 게다가 나무의 중심이 되는 굵은 원줄기는 온데간데없고 2개나 4개 혹은 8개의 가는 원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어 더욱 생소한 느낌을 줬다. 사과나무 하면 떠올랐던 기존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축형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미국·뉴질랜드에서 뜨고 있는 새로운 사과수형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아직까지는 방추형이 전체 사과 재배지의 90%를 차지하지만, 신규로 사과농사에 뛰어드는 농가들은 대부분 다축형을 선택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올해로 15년째 다축형을 연구하고 있는 에드먼드마하협회(Fondazione Edmund Mach) 소속 알베르토 도리고니 박사를 만났다.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현에 있는 이 협회는 1874년 설립돼 농업과 임업 분야의 연구를 활발히 수행해오고 있는 기관이다. 도리고니 박사에게서 다축형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결과지인 축을 젊게 유지하기 위해 축을 밑동부터 잘라낸 모습.


위로 뻗은 원줄기에서 바로 과실 수확

다축(多軸)형은 곧게 위로 뻗은 원줄기가 2개 이상인 수형을 말한다. 수형 이름에서부터 원줄기, 즉 축이 여러개라는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물티 악쎄(Multi asse)’라고 부르는 이 다축형을 도입한 사과농가는 2·3·4·8·10축형 등 다양하게 축의 수를 선택하고 있다. 하나의 원줄기가 굉장히 굵은 방추형과 달리 다축형은 원줄기가 가늘다. 축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원줄기의 굵기는 가늘어진다.

다축형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축이 열매가 달리는 가지, 즉 결과지가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기존의 수형은 원줄기에서 자라나온 원가지나 다시 거기서 자란 덧원가지가 결과지였다. 다축형 사과나무는 원줄기에 바로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각 원줄기에서 새로 나는 가지는 제거한다. 이 점 때문에 다축형 사과나무는 측면에서 보면 폭이 얇다. 방추형이 3차원이라면 다축형은 2차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축 개수도 농가가 농장환경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축이 많아질수록 나무높이는 낮아진다. 도리고니 박사에 따르면 다축형 나무의 높이는 최대 2.4m로 방추형 3.8m에 비해 현저히 낮다.

동일 재배면적 대비 식재하는 사과나무의 수는 다축형이 방추형에 비해 훨씬 적다. 부채처럼 옆으로 넓게 펼쳐진 나무를 줄 따라 심기 때문이다. 도리고니 박사는 “나무수는 적지만 한나무당 생산되는 과실은 다축형이 방추형보다 더 많기 때문에 두 수형의 동일면적 대비 생산량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가지치기도 기계로…모든 작업 편리

각종 농작업이 편리하다는 점은 다축형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각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도 자연히 줄어든다. 가지 자람새가 단순하고 평면형의 수관구조를 가진 덕분이다. 방추형은 나무의 키가 큰 데다 속이 깊어 가지치기나 꽃솎기·열매솎기를 할 때면 가지와 잎을 헤집어야 해 작업이 상당히 까다롭다.

사과 재배에서 기계화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지는 가지치기도 다축형에서는 기계가 할 수 있다. 다축형 나무에서는 가지치기가 까다로운 일이 아니어서다. 일반적으로 가지치기는 어느 가지를 잘라내고 어느 가지를 남길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경력 있는 작업자가 일일이 전정가위로 신중히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다축형의 가지치기는 축을 제외한 나머지 가지는 모두 잘라낸다는 원칙 하나만 지키면 돼 경력이 없는 초보자도 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선 전정기계가 줄과 줄 사이를 이동하면서 일정 반경을 넘겨 자란 곁가지를 잘라낸다.

도리고니 박사는 “다축형은 ‘여름전정’이라고 해서 가지가 자라는 5~6월에 가지치기를 한다”며 “축에서 자란 곁가지를 축을 중심으로 반경 30㎝까지 남기고 다 기계로 자른다”고 설명했다.

병충해 방제에 필요한 약제의 양이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다. 도리고니 박사는 “방추형은 나무 안쪽까지 약제가 닿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고압분무기로 약제를 몇번이나 뿌려야 하지만, 다축형은 눈에 보이는 곳에만 살포하면 돼 농약 사용량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줄을 동시에 방제할 수 있는 기계(Multi row sprayer)를 이용하는 농가도 있다. 방추형 사과나무의 경우 나무의 키가 높아 이 기계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탈리아의 다축형 도입 사과농가들은 포도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사용하는 전정기계나 약제살포기계를 그대로 사과과원에 적용하고 있다.

또 나무의 폭이 얇기 때문에 열간거리도 좁아져 줄과 줄 사이를 이동하는 데 드는 시간도 줄어든다.

 

원줄기가 하나인 방추형은 원줄기에서 자란 원가지나 이 원가지에서 자란 덧원가지에 열매가 달린다. 반면 원줄기가 2개 이상인 다축형은 원줄기에 바로 열매가 달린다.


햇빛 더 흡수해 품질 좋은 과실 맺는다

도리고니 박사는 과실 품질면에서도 다축형은 여러 이점이 있다고 했다. 다축형은 원줄기 상하부가 햇빛을 골고루 받는 데다 원줄기가 흡수할 수 있는 햇빛의 총량도 늘어나 과실 착색이 고루 되고 당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동일한 양의 햇빛이라도 3차원의 방추형은 나무 겉쪽이 가장 많이 받고 나무 안에 위치한 가지나 과실은 그만큼 적게 받는다. 하지만 2차원의 다축형은 안과 밖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모든 축이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다.

다축형은 원줄기를 일정 주기마다 한번씩 잘라내고 다시 새로 자라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도리고니 박사는 “보통 결과지는 새로 나온 지 2~4년에 가장 좋은 품질의 과실을 낸다”며 “다축형은 축 밑동을 아예 잘라내 결과지를 새로 내는 방식으로 나무의 모든 결과지를 젊게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추형은 가지치기를 하면 새로운 가지가 원줄기 상부에 집중돼 자라나기 때문에 하부에 남아 있는 결과지는 오래된 것들로만 이뤄져 있어 좋은 과실을 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배나무도 다축형 가능

도리고니 박사는 다축형을 사과나무뿐 아니라 배나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탈리아 북부 우디네 현에 위치한 시험포장을 찾았을 당시 재식한 지 3년 된 다축형 <카르멘> 배나무가 푸른 잎을 뽐내고 있었다. 도리고니 박사는 “지금은 다축형을 사과나무에 적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앞으로 배나무에도 이 신수형을 적용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다축형 나무이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점도 있다. 축간높이를 균일하게 맞춰주는 일이다. 다른 축에 비해 키가 유달리 작은 축이라면 곁가지를 더 바짝 잘라 원줄기가 좀더 빨리 자랄 수 있게 한다. 다른 축과 달리 삐죽 솟은 축이 있다면 그 축만 조금 잘라내면 된다.

도리고니 박사는 다축형을 도입하는 사과농가들이 전세계적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많은 농가가 우리 시험포장으로 견학을 오고 있어요. 다축형은 정말 장점이 많은 수형이라 세계적인 추세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디네=오은정 기자 onjung@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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