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 역사산책] 단종의 생모…출산 이틀 만에 세상 떠나

입력 : 2019-07-10 00:00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22)조선의 왕비로 산다는 것 (9)현덕왕후 권씨

문종, 세자 시절 잇달아 부인 폐출

훌륭한 인품에 경혜공주 출산한 후궁 권씨가 왕세자빈에 책봉돼

죽은 후 정치적 풍파에 휩쓸려 무덤 파헤쳐지는 등 수난 당해

폐위됐다가 훗날 왕비 지위 회복
 


문종(1414~1452년, 재위 1450~1452년)의 비 현덕왕후(顯德王后·1418~1441년) 권씨는 살아생전 잠시도 왕비의 지위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왕비라 칭하는 것일까? 사후에 왕비로 추숭(追崇)됐기 때문이다.

현덕왕후는 1418년 안동 권씨 권전(權專)과 최아지(崔阿只)의 딸로 충청도 홍주 합덕현에서 태어났다. 세종은 문종이 세자 시절이었던 1427년(세종 9년) 휘빈 김씨를 세자빈으로 간택했으나 2년 만에 폐출한 후, 1429년 순빈 봉씨를 다시 세자빈으로 맞이했다. 그러나 봉씨가 자식을 낳지 못하고 문제도 많이 일으키자 권씨·정씨·홍씨 3명을 세자의 후궁으로 뽑았다.

현덕왕후는 처음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 후궁으로 들어와 종 4품 승휘(承徽)에 오른 후, 1433년에는 종 3품 양원(良媛)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1436년 순빈 봉씨가 세자빈의 자리에서 쫓겨나자 마침내 세자빈이 됐다. <세종실록> 1437년 2월28일 기록에는 “왕이 근정전에 나아가 양원 권씨를 책봉해 왕세자빈을 삼기를 의식과 같이하였다”고 했다. 외부에서 세자빈을 간택하는 관례 대신 세자의 후궁 중에서 세자빈을 뽑은 첫번째 사례가 된 것이다. 그녀는 품성이 훌륭했고, 비록 아들은 아니지만 딸인 경혜공주(敬惠公主·1436~1473년)를 출산한 경험이 있어 다른 2명의 후궁을 제치고 내부 승진할 수 있었다.

세자빈이 된 후에는 왕실의 기대대로 1441년 7월 경복궁 자선당에서 원손인 단종을 출산했다. 이에 대해 세종은 “세자의 연령이 이미 장년이 됐는데도 후사가 없어서 내가 매우 염려하였는데, 이제 적손(嫡孫)이 생겼으니 나의 마음이 기쁘기가 진실로 이와 같을 수 없다”면서 큰 기쁨을 표시하고, 대사면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세자빈은 출산 후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세종실록>에는 “왕세자빈 권씨가 졸(卒)하였다. 빈은 아름다운 덕이 있어 동정(動靜)과 위의(威儀)에 모두 예법이 있으므로, 양궁(兩宮·세종과 문종)의 총애가 두터웠다. 병이 위독하게 되매, 왕(세종)이 친히 가서 문병하기를 잠시 동안 두세번에 이르렀더니, 죽게 되매 양궁이 매우 슬퍼하여 수라를 폐하였고, 궁중에서 모시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울지 않는 이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세자빈의 단아한 모습과 더불어 세종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세종은 며느리를 위한 무덤을 경기도 안산에 조성하고 현덕(顯德)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450년 남편 문종이 즉위한 후, 현덕왕후에 추숭되고, 능의 이름을 소릉(昭陵)이라 했다.

1452년 문종이 승하한 후에는 건원릉의 동쪽에 문종의 무덤인 현릉(顯陵)이 조성되면서 한동안 부부는 사후에 함께하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현덕왕후와 소릉은 사후에 많은 수난을 당했다. 1456년(세조 2년)에 일어난 단종 복위 운동에 현덕왕후의 친정 동생인 권자신이 가담했다가 어머니 최씨와 함께 극형에 처해졌다.

단종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대해 현덕왕후의 사후 보복이 이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연려실기술>에는 “하룻밤에 세조가 꿈을 꾸었는데 현덕왕후가 매우 분노하여 ‘네가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 너는 알아두어라’고 했다. 세조가 놀라 일어나니 갑자기 동궁(세조의 장자, 의경세자)이 죽었다는 기별이 들려왔다. 그 때문에 소릉(현덕왕후 무덤)을 파헤치는 변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동안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됐던 현덕왕후는 중종대에 들어와 그녀의 신주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왕비의 지위를 되찾게 됐다. 또 문종의 현릉 왼쪽 언덕에 그녀의 무덤이 옮겨 왔다. <중종실록>에는 “(문종의 능과 왕비의 능) 사이의 소나무 한그루가 까닭 없이 말랐으므로 공인(工人)이 이를 베니 가려진 것이 트여 두 능이 막힌 데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정령(精靈)이 감응한 바라 하였다”고 70여년 만에 재회한 문종과 현덕왕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현재 경기 구리시 동구릉 경역 내에 동원이강릉 형식으로 조성돼 있는 현릉에는 이처럼 많은 사연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이곳을 찾아보기 바란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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