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으로 보는 세상] 소로의 일기를 읽으며

입력 : 2019-07-08 00:00 수정 : 2019-07-09 00:02

누군가의 일기를 읽는 일에는 약간의 죄책감이 따른다. 출간된 책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공개를 원치 않는 삶의 기록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과 언어가 뒤섞여 있어 글쓴이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가 오래전 일기 쓰기를 멈춘 이유 중에는 그런 위험성 없이 스스로 확정한 텍스트만을 남기겠다는 생각이 한몫했다. 그런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일기를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소로에게 일기를 쓰라고 권유한 것은 스승 랠프 월도 에머슨이었다. “이제 무엇을 할 거니? 일기는 쓰고 있니?” 이 말을 들은 날부터 생을 마치기 직전까지 소로는 일기를 계속 썼다. 1837년 스무살의 소로는 첫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혼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고는 ‘거미조차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노트를 펼쳤다. 그렇다. 일기를 쓸 때는 누구나 혼자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값싼 노트에 휘갈겨 쓴 일기들은 그의 삶에 대한 살아 있는 증언이자 내면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노트는 총 39권이었고 7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45년의 짧은 생애가 이토록 두텁다니!

그가 줄곧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기 쓰기의 공력 덕분일 것이다. 자연에 대한 관찰,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 독서하면서 얻은 단상, 글쓰기의 고민과 절망 등 그 내용도 다채롭다. 일기 대신 시를 한편 적어둔 날도 있고, 생각을 한두문장으로 압축해놓은 날도 있다. 예컨대 ‘사랑의 병을 고치려 한다면 더욱 사랑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좋은 치유책이 없다’ ‘시는 이 땅에 온몸을 딛고 선 시인의 발밑에서 생겨난다’ 등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밑줄 그을 만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소로는 좋은 문장이란 그냥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글을 썼고, 쓰면 쓸수록 자신의 문장과 생각에 대해 부족함을 느꼈다. 그 겸손한 태도가 그로 하여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삶 자체를 꾸준히 살피고 있지 못할 때에는 삶의 때가 덕지덕지 쌓여 삶 자체가 꾀죄죄해진다”는 소로의 말처럼, 나에게도 삶 자체를 꾸준히 살필 수 있는 어떤 행위가 다시 필요하다. 에머슨이 소로에게 물었던 것처럼, 소로가 내게 묻는다. “이제 무엇을 할 거니? 일기는 쓰고 있니?”

나희덕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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