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부터 20㎏ 감자까지 하역 …땀 범벅인데 쉴 틈이 없네”

입력 : 2019-06-14 00:00 수정 : 2019-06-15 23:32
감자·오이 등 몇몇 품목은 한상자당 무게가 20㎏ 이상이고 송품장 미기재 관행도 이어져 하역노조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기자가 감자를 나르는 모습.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박현진 기자가 간다 (19)가락시장 하역노조원

한상자 4㎏인 상추는 30분 안에 수백상자 날라야 해 금세 비지땀

나이 든 노조원은 8㎏ 배추도 척척 30대인 기자보다 작업 속도 빨라

“요령으로 해야지” 한소리 듣기도

휴식은 다음 차 올 때까지 고작 몇분

무거운 감자·오이 하역 쉽지 않고 송품장엔 등급별 개수 표시도 없어

일일이 상자 확인하느라 작업 지연 경매 후엔 중도매인 점포에 배달까지

분회장·노조원 바람

산지서 잘못된 출하 관행 고치고 품목별 배송시간 정해 지켜줬으면…
 


지난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청과부류 거래물량은 234만4000t에 이른다. 하루 평균 7000t을 웃돈다. 애초 설계물량의 2배에 가까운 양이다. 가락시장 안에서 이 막대한 물동량의 처리는 하역노조원이 대부분 도맡고 있다. 화물차에 실린 채 출하된 농산물을 하역하는 일도, 경매에서 낙찰된 농산물을 각 중도매인 점포로 배송하는 일도 모두 그들의 몫이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하역노조원의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최근 기자는 하역노조원 체험을 통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잠시나마 들여다봤다.


 

경매에서 낙찰된 농산물을 각 중도매인 점포로 배송하는 일도 하역노조원이 맡는다.


쉴 틈 없는 하역노조원의 하루

가락시장 내 하역노조원은 모두 1200여명. 이들은 가락항운노동조합·서울경기항운노동조합·서울청과하역노동조합에 각각 소속돼 있다. 보통 각 하역노조 산하 한 분회가 한 도매법인의 하역업무를 맡는다. 분회에 따라 다시 과일·채소를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채소류 하역작업이 한창인 5월31일 오후. 송용호 가락항운노동조합 동화청과 분회장은 “덩치 좀 있다고 이 일을 쉽게 생각하다간 다친다”고 걱정부터 꺼냈다. 분회 소속 하역노조원은 206명이다. 출근시간에 따라 오전·오후·저녁조로 나뉘어 일한다. 그래야만 24시간 돌아가는 가락시장의 물류를 감당할 수 있어서다. 송 분회장은 “오이·감자 같은 품목은 한상자당 무게가 20㎏이 넘는다”며 “무게가 가벼운 잎채소·쌈채소부터 하역작업을 시작해보라”고 권했다.

잎채소·쌈채소는 소형 화물차에 직접 실어 출하하는 소규모 농가가 대부분이다. 화물차가 경매장에 줄지어 들어오면 하역노조원 두세명이 한대씩 하역작업을 시작한다. 바닥에 팰릿을 깔고 그 위로 상자를 차곡차곡 쌓는 방식이다.

상추는 한상자당 무게가 4㎏밖에 안되지만 수십·수백 상자를 재빨리 날라야 하니 금세 비지땀이 흘렀다. 무턱대고 쌓아서도 안된다. 경매사·중도매인이 검수할 본보기는 맨 윗자리로 올리고, 송품장에 적힌 개수·등급이 맞는지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한 팰릿을 얼른 채우면 지게차가 떠서 정해진 위치로 옮겨놓는다. 화물차 한대당 주어진 시간은 30분 정도뿐. 오후 5시45분부터 시작하는 경매시각에 맞추려면 쉴 틈이 없다.

‘내일모레면 환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하역노조원은 “하루에 15시간씩 거의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게 고역”이라며 “쉬어봤자 숙소에서 쪽잠을 자거나 잠시 앉아서 한숨 돌리는 정도”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화물차에 팰릿째로 실려 오면 하역이 빠르고 편할 텐데 손으로 내려야 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기준 가락시장 내 농산물의 팰릿 출하율은 30% 안팎이다. 산지에서도 팰릿 출하율을 높이고 싶지만 진척이 더디다. 화물차 한대당 실을 수 있는 농산물의 양이 줄어 물류비가 늘어날뿐더러 소규모 출하농민은 지게차·집하장 같은 여건을 마련하기가 벅차서다.

동화청과 분회는 평균연령이 57세일 정도로 나이 든 조합원이 많다. 그런데도 갓 서른을 넘긴 기자보다 손이 훨씬 빨랐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상자당 8㎏짜리 알배기배추를 5t 화물차에서 팰릿 위로 옮겨봤지만, 머리 희끗희끗한 하역노조원들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기어코 “힘이 아니라 요령으로 하는 것”이란 한소리를 들었다. 40~50분 만에 5t 화물차 한대 물량을 다 내리고 나서야 몇분 쉴 시간이 생겼다. 하역노조원들도 다음 화물차가 들어올 때까지 땀을 식혔다.

박문철 분회 상무는 “이렇게 고된 노동을 15시간씩 해서 얻는 임금이 하루 18만~20만원”이라며 “조합원 가입을 희망하던 젊은 사람이 며칠 일해보고 포기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날마다 하역비와 배송비를 받아 조합비·산재기금·장비관리비 등을 공제하고 나서 출근한 조합원 숫자로 똑같이 나눈다”고 덧붙였다.
 

경매장 한편에 자리한 하역노조원 숙소.


“잘못된 출하 관행 바로 잡아주길”

잎채소·쌈채소 하역작업 이후에는 감자·고구마 경매장으로 넘어갔다. 한상자당 20㎏이 넘는 감자를 어깨에 메고 나르니 얼굴과 옷은 땀·흙 범벅이다. 화물차·전동차가 빼곡한 통로 바로 옆에서 하역작업이 이뤄지니 흙먼지와 매연이 코를 찔렀다. 차츰 무더워지는 날씨 속에서도 하역노조원마다 마스크를 꼭 챙겨 쓴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젊은 축에 속한다는 30대 하역노조원 이모씨는 “한시간만 일해도 코 안이 새까매진다”며 “나이 드신 분들은 기관지부터 관절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고 말했다.

무게도 무게지만 감자는 다른 품목보다 하역작업에 걸림돌이 많았다. 잘못된 출하 관행 탓이다. 등급기준이 10개를 훌쩍 넘어가는데도 송품장에 등급별 개수가 적혀 있지 않았다. 일일이 상자를 확인해 등급대로 하역하다보니 작업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점점 어깨는 아프고 입 안에서는 흙이 씹혔다. 정신 못 차리고 ‘왕왕’을 쌓아야 할 자리에 ‘왕특’을 올려놨더니 옆에서 얼른 바로잡는다. 나중에 등급별 숫자가 안 맞으면 다시 처음부터 선별해야 한단다.

송 분회장은 “감자·고구마는 물론이고 귤·만감류·참외·단감 등 아직도 송품장이 빈 채로 출하되는 품목이 많다”며 “산지에서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준다면 하역노조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자·고구마 담당인 한 경매사도 “송품장에 기재하지 않으면 등급별 경락값이 크게 벌어졌을 때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산지도 손해”라며 “등급이 과하게 세분화된 품목은 관계기관과 유통주체가 합의해 줄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이는 정말 무거웠다. 100개들이 한상자당 무게가 20㎏을 훌쩍 넘어갔다. 거래단위를 무게가 아니라 개수로 정해놔서다. 더욱이 한 화물차에 여러 출하자의 오이가 뒤섞인 채 출하됐다. 무거운 오이상자를 들고 출하자별 팰릿을 찾기 위해 헤매야 했다. 오이 하역작업을 맡은 하역노조원들이 “필요인력과 소요시간이 다른 품목과 비교가 안된다”고 토로하는 게 이해가 됐다. 남기호 분회 현장팀장은 “오이 하역비가 다른 품목과 엇비슷한데 인상이 필요하다”며 “거래단위를 중량으로 바꾸는 식으로 조절이라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역작업이 끝은 아니다. 품목별로 30분에서 한시간 걸리는 경매가 마무리되면 배송작업이 시작된다. 낙찰된 농산물을 해당 중도매인 점포까지 날라야 한다. 잎채소·쌈채소를 가득 실은 전동차를 따라가니 한 중도매인 점포에 도착했다. 상자를 옮기다가 두어차례 떨어뜨리고 말았다. 금세 여기저기서 헛기침으로 눈치를 준다. 상자 안에 담긴 농산물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한 하역노조원은 “배송이 늦어지면 중도매인들 항의가 말도 못한다”며 “다들 시간에 쫓기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박 상무 역시 “경매장이 출하량에 비해 워낙 좁으니 채소류가 빠져야 과일류를 하역할 공간이 생긴다”며 “공간부족이 심각해 화물차·전동차가 오가는 위험한 통로에서 하역작업을 해야 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배송작업을 끝으로 체험이 끝났다. 해가 저물었어도 불을 환하게 밝힌 경매장은 여전히 채소류 배송과 과일류 하역작업으로 북적거렸다. 경매장 한편의 하역노조원 숙소에선 아침 일찍 출근했던 오전조 몇명이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하역노조원 한분이 기자를 불러 세웠다.

“도매법인·중도매인·출하자는 물론이고 관리공사(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도 우리를 좀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품목별로 출하시간·배송시간만 딱 정해놓고 지켜줘도 지금보다 서너시간은 일이 줄어들 겁니다. 우리도 가락시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 아닙니까. 이 이야기를 꼭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박현진, 사진=김병진 기자 ji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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