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건국 10개월 전 세상 떴지만…‘조선의 첫 왕비’로 인정받다

입력 : 2019-06-05 00:00 수정 : 2019-06-08 23:54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17)조선의 왕비로 산다는 것 (4)신의왕후 한씨

북 오랑캐·남 왜구 침입 등 고려 격동의 시기에 15세 나이로 이성계와 혼인

6남2녀 키우며 집안 돌봐

아들 2명 왕위에 올라 조선의 첫 국모 칭호도 마땅

태조의 첫번째 부인으로 건국 직후 ‘절비’로 추존 정종·태종도 추숭작업 온힘

무덤 ‘제릉’ 북한 개성에 소재
 


조선의 첫 왕비로 인정받고 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1337~1391년). 그는 정작 조선에서는 한순간도 왕비로 살아보지 못했다. 조선 건국(1392년 7월)을 약 10개월 앞둔 1391년 9월에 이미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1335~1408년·재위 1392~1398년)는 1335년 10월 함경도 함흥에서 아버지 이자춘과 최한기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에 대해 <태조실록>은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우뚝한 콧마루와 임금다운 얼굴로써, 신채(神彩)는 영특하고 준수(俊秀)하며, 지략과 용맹은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냥과 활쏘기에 능해 매를 구하려는 북방사람들은 “이성계와 같이 뛰어나게 걸출한 매를 얻고 싶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1351년 17세의 이성계는 인근 지역 유력 세력가인 한경(韓卿)의 딸을 부인으로 맞았으니, 당시 15세의 신부가 바로 신의왕후다.

이성계의 증조부가 두만강지역의 여진인들에게 쫓겨나 안변으로 내려왔을 때, 최기열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안변지역 세력가들과 두터운 관계를 쌓았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져 이성계는 이곳의 유력자인 한경의 딸과 혼인을 한 것이다.

그녀가 태어날 때 가까이에 청학산(靑鶴山)이 있었는데, 풍류소리가 3년 동안 끊이지 않았다 해 풍류산(風流山)이라 이름이 바뀌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1354년 맏아들 방우를 낳았고 함흥의 운전리에 세거했다. 방과·방의·방간에 이어 1367년에는 다섯째 방원을 출산했다.

그녀가 이성계와 혼인해 자식들을 키우던 때 고려는 북쪽에 홍건적과 여진족, 남쪽엔 왜구들의 침입이 끊이지 않는 격동의 시기였다. 이성계는 압록강으로 쳐들어온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동북면 병마사로서 여진족의 토벌에도 큰 공을 세우면서 그 입지를 튼튼하게 다져나갔다. 1380년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치는 승전으로 이성계 장군의 명성은 더욱 높아갔다.

1388년엔 이성계는 물론이고 그의 아내 삶에도 가장 큰 사건인 위화도회군이 일어났다. 회군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 이성계는 포천 제벽동 농장에 있던 그녀를 동북면(현 함경도 함흥)에 피신시키기도 했다. 위화도회군의 성공은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서막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조선이 건국되기 전년인 1391년 9월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녀의 무덤은 개성 남쪽 해풍군(海豊郡) 치속촌 언덕에 조성했다.

태종 때 세운 신의왕후의 비문에는 그녀의 성품과 내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다.

‘후(后)는 낳아서부터 현숙(賢淑)하고 완순(婉順)하며, 총명하고 슬기로워 범상한 사람과 달랐다. (중략) 태상왕(太上王·태조)께서 처음 장상(將相)이 되어 수십년 동안을 전쟁에 참여하여 편안한 해가 없었는데, 후가 능히 힘을 다해 집안을 다스려서 성공하도록 했고, 또 성품이 투기하지 않아서 첩시(妾侍)를 예로 대접했으며, 많은 아들이 있어 의리로 가르치셨다.”

이성계가 전쟁에 나가 집안을 돌보기가 힘든 상황에서 그녀는 6남(방우·방과·방의·방간·방원·방연) 2녀(경신공주·경선공주)를 키웠다.

특히 그녀의 아들 가운데 정종(방과)과 태종(방원) 2명의 왕을 배출했으니 조선의 첫 국모라는 칭호를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다.

신의왕후는 조선의 건국은 지켜보지 못했지만 태조의 첫번째 부인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건국 직후 그녀는 절비(節妃)로 추존되고 능호를 제릉(齊陵)이라 했다. 그녀의 아들인 정종과 태종 역시 어머니의 추숭작업에 힘을 기울였다. 1398년 8월 즉위한 정종은 그해 11월11일 절비 한씨를 신의왕후라 추존하고, 왕비를 모시는 사당의 이름을 인소전(仁昭殿)이라 했다. 인소전은 태조 승하 후 태조와 신의왕후를 함께 모시면서 사당의 이름도 문소전(文昭殿)으로 바뀌었다. 태종은 1408년 9월6일 어머니의 시호를 가상(加上), ‘승인순성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라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최대의 예우를 보였다.

제릉은 현재 개성에 위치했는데,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42기 가운데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厚陵)과 함께 북한에 소재하고 있다. 누구나 제릉을 찾아 신의왕후의 모습을 그려볼 날을 기대해본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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