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 역사산책] ‘육례’ 따라 혼례 거행…왕·왕비 순서로 가마 행렬

입력 : 2019-05-22 00:00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16)조선의 왕비로 산다는 것 (3)왕비의 혼례식 풍경

삼간택 거쳐 왕비 후보로 선발되면 별궁서 혼례 전까지 왕실법도 익혀

왕, 친영의식 통해 왕비 궁궐로 모셔 가마 행렬 땐 왕실 화려함·위엄 과시

신하들, 신분·임무 맞는 의례복 착용
 


최종 삼간택을 거쳐 왕비 후보로 선발된 처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별궁(別宮)으로 모셔졌다. 별궁은 예비 왕비가 왕실의 법도를 익히고 왕비로서 갖춰야 할 여러 덕목을 교육하는 첫 장소였다. 삼간택이 끝난 뒤 혼례식이 거행되는 날까지 머물게 되는데, 50일 남짓이었다. 때에 따라선 그 기간이 단축되는 경우도 있었다. 별궁은 왕실의 혼례식 순서와 행사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다.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살리고 사가(私家)에서 왕을 맞이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역할도 했다.

별궁으로 사용된 장소는 몇차례 변화가 있었다. 시기에 따라 태평관·어의궁·운현궁·안동별궁으로 장소를 바꿨다. 명성황후 혼례식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에서 거행됐다.

간택에 이어 혼례식에서는 여섯가지의 예법, 즉 육례(六禮)가 적용됐다. 육례는 왕이 혼인을 청하는 의식인 납채(納采), 성혼의 징표로 예물을 보내는 납징(納徵) 또는 납폐(納幣), 왕비 책봉의 날짜를 잡는 고기(告期) 순으로 진행된다. 이어 왕비로 책봉하는 의식인 책비(冊妃), 왕이 별궁으로 가서 왕비를 모셔오는 의식인 친영(親迎), 궁궐에 돌아온 왕과 왕비가 함께 잔치를 베푸는 의식인 동뇌(同)가 열렸다. 육례 중에서도 최고의 의식은 친영으로 오늘날 예식장 등에서 행해지는 혼례식에 해당한다. 친영은 별궁에서 여러가지 교육을 받고 있던 왕비를 궁궐에 모셔오는 의식인데, 조선시대 왕실의 혼례식을 기록과 함께 그림으로 담은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의‘반차도(班次圖)’에는 혼례식 현장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반차도’는 ‘지위와 임무에 따라 배치한 그림’이란 뜻이다. ‘반차도’ 전반부에는 왕의 행차를 앞에서 인도하는 병력과 함께 왕의 존재를 알리는 둑기(纛旗·쇠꼬리로 장식한 큰 깃발)가 보인다. 혼례식은 크게 왕의 가마가 중심이 되는 어가(御駕) 행렬과 왕비의 가마가 중심이 되는 왕비 가마 행렬로 구성된다. 왕의 행렬 앞에는 화려하고 장엄하게 왕의 출현을 알리는 각종 깃발과 의장물을 들고 가는 의장병과 내취(內吹·악대), 경호 군사 등이 나타난다. 왕의 행렬 바로 뒤에는 문무백관과 군사 지휘관 등 왕을 수행하고 호위하는 신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왕의 행렬에 이어 왕비의 행렬이 등장하는데, 왕비의 책봉 문서인 교명(敎命)을 담은 교명 요여와, 왕비의 도장인 금보(寶)와 옷을 담은 가마가 먼저 나타나고 이어서 왕비의 가마가 보인다. 왕의 가마는 사방문을 열어 지나가는 군중들이 왕의 모습까지 직접 볼 수 있게 했으나, 왕비의 가마는 사방의 문을 닫아 왕비의 모습을 볼 수 없게 했다. 친영 행렬의 후미 부분에는 뒤에서 왕을 경호하는 후사대(後射隊)가 등장하고 있다.

혼례식에서는 왕실의 화려함과 함께 위엄을 돋보이게 하는 각종 장치가 활용됐는데, 의장 깃발에는 해·달·산천을 비롯해 사신도에 표현된 동물, 가구선인(駕龜仙人) 등의 그림을 그려넣었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실용성과 신선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상징성을 겸비한 부채선(扇)과 양산(陽 )·개(蓋) 등도 활용됐다. 악기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행렬 선후간 동작을 일치시키는 기능을 했다. 행사에 동원되는 사람은 신분과 맡은 임무에 따라 각기 특징 있는 의례복을 착용토록 했다. 의례복은 형태나 색채에서 독특한 개성을 지니게 했으며, 또한 일부 여성들은 너울과 같은 가리개를 착용했다. 행렬에는 말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말은 주로 신분이 높은 인물이 타는데 일부 내시와 여인들이 탄 것도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말은 백마를 비롯해 흑마·갈색마 등 서로 다른 색을 띠는 게 흥미롭다. 왕실 혼례식의 풍경이 생생하게 드러난 반차도를 통해 당시 왕비의 혼례식 현장으로 가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혼례식의 모습을 기록과 함께 그림으로 정리한 의궤(儀軌)가 있기 때문이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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