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금융 50년 산증인을 찾아] 이정길 고양 지도농협 초대 조합장

입력 : 2019-05-20 00:00

“15개 이동조합 합병해 도입…1972년 예탁금 8600만원 넘어 전국 1위”

당시 돈 빌리고 맡길 곳 마땅치 않아

문 열자 지역 곳곳서 예금하러 와 전국 조합서 매일같이 배우러 오기도
 


“그땐 고양군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이 돈을 갖고 예금하러 왔지.”

10일 경기 고양 지도농협(조합장 장순복)에서 만난 이정길 전 지도농협 조합장(90)은 50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엊그제 일처럼 기억했다. 지도농협은 상호금융을 처음 도입한 150개 시범조합 가운데 하나다. 그는 당시 제1대 조합장을 맡아 지도농협을 출범시키고 상호금융 업무를 개시했다. 1930년생인 그는 농협 상호금융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상호금융을 처음 시작했던 대부분의 조합장들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이 전 조합장은 이동(里洞)이나 자연부락 단위로 조직된 이동조합의 합병과정부터 설명했다. 당시 지도면에는 15개 이동조합이 있었고, 그는 토당리(현 고양시 덕양구 토당동) 이동조합장을 맡고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이동조합의 규모는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조합원이 60명 정도였고, 사무실도 없어 집에서 모였어. 사업이라곤 출자금으로 정미소를 사서 운영하는 게 전부였는데 그것도 벅찼지.”

그렇게 6개월 정도 이동조합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1969년 6월 어느 날 면사무소 회의실에서 이동조합장 회의가 열렸고, 그는 15개 이동조합을 합병한 지도단위농협의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조합장이 된 그는 초가를 구입해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합병조합의 출범을 준비했다. 그런 다음 1970년 2월4일 지도단위농협 개소와 함께 상호금융 사업을 시작했다.

1970년 지도단위농협 개소 모습.

전체 직원은 11명. 그중 2명이 상호금융을 담당했고, 조합엔 금고를 비치했다. 과연 누가 돈을 맡기러 올까 걱정스러웠지만, 막상 문을 열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농촌엔 돈을 빌리거나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농민들은 연 60%가 넘는 고리의 사채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출금리가 22%, 예금금리가 10%였어. 예금이 계속 늘어 자립조합으로 선정됐고, 전국의 조합에서 매일같이 상호금융을 배우러 왔지.”

<농민신문>의 전신인 <농협신문> 1972년 7월24일자 보도를 보면 그의 말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6월말까지 상호금융을 실시한 701개 조합 가운데 지도단위농협이 예탁금 8641만4000원으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후 지도농협의 예수금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엔 6000억원을 돌파했다.

상호금융을 처음 취급하다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 그는 “신용이나 담보가 부족해 다른 사람이 대신 대출을 받아 싸우는가 하면 친인척이 조합장 이름을 대면서 다짜고짜 돈을 빌려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제1대부터 5대까지 조합장을 지낸 그는 1985년 농협을 떠났다. 지금도 농사를 지으며 지도농협의 산파이자 조합원으로서 가끔 농협을 찾는다. 우뚝 서 있는 농협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고양=김봉아,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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