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농협 성장의 원동력…저개발국·북한에도 전파해야”

입력 : 2019-05-20 00:00

농협상호금융 100년을 향해 1부 - 상호금융의 역사 (4)한호선 전 농협회장에게 듣는다

1969년 실무 담당 과장으로 서봉균 회장과 연구 끝에 탄생

7월20일 상호금융 업무 시작 법적 근거도 마련해 고리채 해결 이동조합 합병도 탄력 받아

농민에 실익 주자 주인의식 생기고 하향식 조직도 상향식 전환해

농협을 한단계 도약하게 만들어 “상호금융 이끈 서 회장 재조명을”
 


농협 상호금융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호선 전 농협회장(84)이다. 한 전 회장은 1969년 상호금융 도입 당시 직원으로서 실무를 담당했다. 상호금융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현재 <농협상호금융 50년사> 발간을 위한 자문 역할도 맡고 있다. 14일 서울 마포구 농협동인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 전 회장은 50년 전으로 돌아간 듯 열정적인 눈빛과 몸짓으로 상호금융 역사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상호금융이 탄생한 지 벌써 50년이나 됐다니 자랑스럽고 대견합니다. 그런데 상호금융의 역사와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 전 회장은 상호금융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호금융을 ‘돈장사’ 정도로 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호금융이 농촌과 우리나라 경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제대로 알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금융의 탄생은 한 전 회장과 서봉균 제6대 농협회장의 남다른 인연에서 시작된다. 1961년 종합농협 출범 이후 공채 1기로 입사한 한 전 회장은 1969년 농협중앙회 지도과 대리로 일하고 있었다. 그해 3월 어느 날, 서 회장은 직원들을 한명씩 불러 농협의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당시 농협회장은 정부에서 임명해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개 대리였지만 당당하게 얘기했어요. 농협은 중앙회·군조합·이동조합의 3단계 조직인데, 이동조합이 능력이 없어 문제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보다는 눈에 보이는 이득(가시이득)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동조합이 경영체로서 능력을 갖춰 농민에게 이득을 줘야 한다, 그래야 농민들이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려면 조합의 규모를 키우고 사업을 줘야 한다 …. 이런 말들을 쏟아낸 것이다. 그랬더니 서 회장은 대뜸 “한번 추진해보라”면서 그를 지도과장으로 승진시켰다. 삼십대 초반, 대리 1년차에 과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지도과장이 된 후 그는 1만6000여개의 이동조합을 읍·면당 1곳씩 1500개 조합으로 3년 안에 합병하는 계획을 세우고, 합병을 유인하는 먹거리가 될 만한 사업을 찾았다. 그러던 중 서 회장 집무실에 갔다가 흑판에 써진 ‘相互(상호)’라는 단어를 보고 회장에게 물었다. 서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사령장을 주면서 한 말을 이렇게 전했다.

“임자! 농촌에서 부자들은 고리채를 빌려주고 돈을 많이 버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 농사를 못 지어. 부자들 돈을 조합이 맡아다가 좀 손해를 보면서 못사는 사람들한테 싸게 주는 방법이 없을까? 상호부조해서 잘살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보시오.”

당시 농촌에 만연한 악성 고리채의 해결방안을 찾으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서 회장은 상호라는 단어만 써놓고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호금융은 여기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던져준 문제를 서 회장과 한호선 당시 지도과장이 함께 풀면서 찾은 답이 상호금융이었다.

그러나 답을 찾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영세한 이동조합이 손해를 보면서 금융업무를 한다는 건 무리였다. 이동조합은 군조합에서 농사자금을 받아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조합이 저리로 대출해주면 그 손실만큼 중앙회 신용사업(군조합)의 수익으로 무이자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또 이같은 상호금융을 합병의 먹거리로 조합에 주면 합병 추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농협 내부의 반대와 법적인 문제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69년 7월20일, 합병조합 가운데 150개 시범조합에서 상호금융을 시작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조합을 돌며 교육을 하는 한편 국회·재무부 등을 쫓아다니며 상호금융의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이후 상호금융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이동조합의 합병도 급물살을 탔다. 양적인 성장보다 더 큰 성과는 농촌의 고리채 문제가 해결되고 양질의 농업금융이 확대된 것이다.

“농민들에게 실익이 돌아가자 농민들은 조합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됐어요. 하향식이었던 조직이 상향식으로 전환된 겁니다. 이처럼 상호금융은 농협을 성장시킨 원동력이며, 상호금융 도입을 이끈 서 회장이야말로 농협을 다시 일으킨 ‘중시조(中始祖)’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전 회장은 3년간 상호금융 도입과 이동조합 합병의 산파 역할을 한 뒤, 1972년 새마을운동 추진을 위해 청와대로 파견됐다. 이후 1980년 다시 농협으로 돌아와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제14대·15대 회장을 지냈다.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삼십대 청년이 품었던 열정은 지금도 그대로다. 이제 백발이 된 청년의 바람은 상호금융을 세계에 전하는 것이다.

“상호금융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 농협만의 독특한 협동조합 금융입니다. 한국 농협의 경험을 저개발국가에 수출하는 것은 물론 통일 이후 북한에 전파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합니다.”

김봉아, 사진=김병진 기자 bong@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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