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영역 확대·온라인망 구축 …외환위기 넘어 ‘성장가도’

입력 : 2019-05-08 00:00 수정 : 2019-05-08 09:26

농협 상호금융 100년을 향해’ 1부 - 상호금융의 역사 (2)성장기

자기앞수표 취급 등 부대업무 개발 준조합원 세금우대로 사업량 확보

1989년에 전국 온라인망 구축 1993년 제2금융권 첫 신용카드 발급

1995년엔 타행환 업무도 개시

맵시창구 도입 등 고객서비스 강화 외환위기 땐 농업인우선대출 실시

1998년 ‘예수금 50조원’ 첫 돌파
 


지금은 전국의 농·축협 어디에서나 모든 은행으로 돈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거래가 가능해진 것은 불과 30년 전 농협 상호금융에 온라인망이 구축되면서부터다. 1969년 농촌의 고리채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된 농협의 상호금융은 1980~1990년대 전국적인 온라인망을 구축하고 업무영역을 확대하면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나갔다. 특히 1990년대 말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역의 중추적인 금융기관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입지를 굳혔다.



◆업무확대와 제도개선으로 경쟁력 높여=1980년대 농협 상호금융을 둘러싼 금융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금융자율화 정책으로 정부가 은행의 민영화를 단행하면서 은행들이 상호금융의 경쟁자로 등장했다.

은행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는 우체국이었다. 1977년 농협이 우체국의 우편저금을 인수했지만, 다시 수신업무를 취급하게 된 우체국은 1983년 이후 연평균 50%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또 1982년 새마을금고법 제정으로 사업기반이 강화된 새마을금고도 단위조합을 위협했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농협 상호금융은 1983년 ‘상호금융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단위조합 영업창구를 신용창구와 경제창구로 분리하고, 예금회계기 등 수신장비 설치를 지원했다.

수신제도 개선도 추진했다. 1986년 우대자유예금과 학생장학적금 취급, 정기적금의 계약기간 다양화 등을 담은 ‘상호금융 수신제도 개선방안’을 수립해 정부의 승인을 얻었다. 대출과 관련해서는 1986년 ‘상호금융 자금운용 제도개선 방안’을 수립·추진했다.

상호금융 업무범위 확대와 준조합원제도도 성장의 발판이 됐다. 자기앞수표 취급, 공과금 수납대행, 농어민연금보험료 수납대행 등 다양한 부대업무를 개발해 수수료 수입을 확보했다. 1993년엔 제2금융권 가운데 처음으로 신용카드업무를 시작해 농촌지역의 신용카드 보급확대에 큰 역할을 했다. 또 1989년 준조합원에 대한 세금우대 혜택으로 지역주민에게도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사업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1989년 모든 조합에 온라인망이 구축되면서 금융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온라인화로 조합과 모든 은행 연결=“중앙회 신용사업과 단위조합은 물론 조합과 조합끼리도 거래가 되지 않아 고객들의 불편이 컸습니다.”

1970~1980년대 농협에 근무한 동인들의 이야기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협중앙회 신용사업(현 NH농협은행)부문의 온라인화가 추진된 것은 1980년대초. 농협 상호금융은 이보다 늦은 1989년 모든 조합에 온라인망을 구축했다. 또 조합 영업점과 중앙회 영업점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상호간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온라인 네트(NET)거래도 추진해 전국 4000여개의 점포를 하나로 연결했다.

1994년엔 다른 은행들과의 거래가 가능하도록 금융전산망에도 가입했다. 이에 따라 1995년 전국 조합 영업점에서 타행환 등 업무를 개시해 농촌에서도 도시와 동일한 수준의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조합도 일반 은행 수준의 금융인프라를 구축하고 수수료 수입증가에 따른 경영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1990년대 한 조합의 창구모습. 1990년대에는 고객서비스 강화를 위해 맵시창구가 도입됐다.

◆고객서비스 강화로 IMF 위기도 극복=1990년대 후반 금융계를 강타한 IMF 외환위기는 농협 상호금융의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체질이 약한 일부 금융기관들은 시장에서 퇴출됐지만 농협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것이다.

우선 고객 중심의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농협은 금융기관이라기보다는 정부 정책 대행기관이라는 인식이 강해 고객서비스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고객만족’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농협은 고객서비스 강화를 위해 ‘맵시(MAPSI)창구’를 도입했다. ‘조합원을 부모처럼 고객을 애인처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1994년 전국 조합에 맵시창구가 생겨났고, 맵시창구 성공다짐대회 개최 등을 통해 맵시창구는 활성화됐다.

안전하고 든든한 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 1998년엔 상호금융예금자보호제도를 도입했다. 예금자보호제도는 파산 등으로 금융회사가 예금을 지급할 수 없을 때 금융회사를 대신해 예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1990년대말엔 IMF로 위기에 내몰린 농민들을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영농자금이 부족한 농민을 지원하는 농업인우선대출과 농업인대출금 특별연기·대환제도를 실시하는가 하면, 1998년 정부의 농가부채대책위원회 구성에 발맞춰 상호금융대출금 2년 상환연기 등을 추진했다.

이처럼 IMF라는 난관 속에서도 농협 상호금융은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 결과 1997년 3월31일 예수금 40조원을 달성한 데 이어 불과 1년여 만인 1998년 7월20일 금융기관 최초로 50조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봉아 기자 bong@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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