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왕후의 품격? 그 속에 감춰진 ‘살얼음판 일생’

입력 : 2019-05-08 00:00 수정 : 2019-05-08 23:52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14)조선의 왕비로 산다는 것 -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세자빈서 정식 왕비된 인물 단 6명

세자 교체·정변 등 변수 적지 않고 후궁·친정 인해 폐위되는 사례도

자유 없는 답답한 생활이 일반적

권력·부 보장되는 지위라기보다 내조 힘쓰는 ‘왕의 조력자’ 역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조선 왕비의 모습은 화려하다. 우아한 자태와 미모, 여기에 더해 화려한 궁중 복식까지 갖춰 입었으니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 될 법하다. 몇년 전 필자는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강좌에서 ‘주부들이여 왕비가 되자’라는 주제의 특강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이에 필자는 제목을 ‘왕비로 산다는 것’으로 바꾸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하고, 실제 이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의 왕비는 동화 속 왕비처럼 결코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가 많이 제한되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선의 왕비는 엄격한 궁중에서 틀에 박힌 일상을 살아가는 힘든 직업을 가진 존재였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왕비가 되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남편이 세자인 시절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그가 왕위에 오르면 저절로 왕비가 되는 것이다. 세자빈으로 간택되는 경우 대개 10대의 나이에 3코스의 간택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정작 이 코스를 거쳐 조선의 왕비가 된 인물은 6명에 불과하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 연산군의 비 폐비 신씨, 인종의 비 인성왕후 박씨,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씨, 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 경종의 비 선의왕후 어씨다. 조선에 27명의 왕이 재위했는데, 이처럼 정통 코스를 거친 왕비가 소수에 불과한 이유는 무엇일까?

계유정난, 단종의 폐위, 두차례의 반정 등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변수들이 그만큼 다양하게 등장한 탓이 크다. 또 장자가 아닌 차남이나 손자의 즉위, 여기에 더해 후궁 소생의 왕들이 즉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양녕대군의 세자빈과 같이 세자가 교체되는 바람에 대군 부인으로 강등된 사례도 있고, 인수대비로 널리 알려진 성종의 어머니는 남편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세자빈의 지위를 잃었다. 소현세자의 빈 강씨는 의문의 남편 죽음으로 세자빈의 지위 박탈은 물론 사약까지 받았다. 혜경궁 홍씨 역시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세자빈의 지위를 잃게 됐다.

세자빈이 됐어도 순탄하게 왕비에 오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씨는 세자빈, 왕비, 그리고 아들 숙종이 왕이 되면서 대비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그만큼 세자빈에서 왕비까지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던 것이다.

왕실의 자손을 번창하게 하기 위해 왕이 후궁을 두는 것을 인정했던 만큼, 왕이 후궁에게 마음을 뺏기면 왕비의 가슴앓이도 심했다. 성종과 폐비 윤씨와의 갈등에도 성종이 후궁을 총애하는 것에 대한 폐비 윤씨의 시기와 질투가 큰 몫을 했다. 왕비 집안에 대한 정치적 견제도 심했다. 태종이 부인인 원경왕후의 동생들을 처형한 사례나, 태종이 세종의 장인이자 소헌왕후의 부친인 심온을 처형한 것과 같이 왕비가 된 순간 가족들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도 여러차례 발생했다.

왕비가 된 후 정변으로 폐위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조의 집권으로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폐비가 된 정순왕후는 현재의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인근에서 옷감에 물들이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폐위된 지 230여년 만인 숙종대에 복권되기는 했지만, 20대 이후의 전 생애를 일반인으로 살아갔던 정순왕후의 삶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폐위로 폐비가 된 신씨와 유씨의 삶도 남편의 몰락과 함께 참담함을 거듭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연산군과 폐비 신씨, 광해군과 폐비 유씨는 사후에 남편과 함께 묻히게 된 점이다. 현재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연산군묘와 경기 남양주의 광해군묘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이 쌍릉 형식으로 조성돼 있다.

왕비는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지위가 아니라, 답답한 구중궁궐에서 왕의 내조에 전념하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아미산(峨嵋山)과 궁궐 후원을 산책하거나, 궁궐 안에서 독서를 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왕비의 숨통을 터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궁궐을 찾는다면 언뜻 보기엔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실제로 많은 아픔을 지니며 살아갔을 왕비들의 모습을 떠올려봤으면 한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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