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 역사산책] 폭음·상상임신에 동성애까지…또 폐출

입력 : 2019-04-10 00:00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11)세종의 며느리 잔혹사<하>

두번째 세자빈에 봉려의 딸 간택

봉씨, 궁궐 안에서 술 즐겨 마시고 세자와 사이 안 좋아 후사 없어

여종 소쌍과의 스캔들도 일파만파 세종, 진상 파악 후 결국 폐빈 결정

세번째 세자빈은 후궁 출신 권씨 아들 출산 이틀 만에 후유증으로 승하
 


1429년(세종 11년) 7월 휘빈 김씨가 2년3개월 만에 세자빈의 자리에서 쫓겨난 후 세종은 두번째 세자빈 간택을 주도해나갔다. 그해 8월4일 세종은 세자빈 간택에 대해 자신이 중요시하는 기준을 이야기했다.

“이제 동궁(東宮)을 위해 배필을 간택할 때에는 마땅히 처녀를 잘 뽑아야 하겠다. 세계(世系)와 부덕(婦德)은 본래부터 중요하나, 혹 용모가 아름답지 않다면 또한 불가(不可)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가문과 여성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이외에도 용모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세종은 이어 신부 후보들을 창덕궁에 모이게 하고 내관(內官)으로 하여금 시녀(侍女) 및 효령대군과 더불어 뽑게 하겠다고 했다.

이에 유독 허조(許稠)는 “만약에 한곳에 모이게 하여 가려 뽑는다면 오로지 얼굴 모양만을 취하고, 덕(德)을 보고 뽑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세종은 “잠깐 본 나머지, 어찌 곧 그 덕(德)을 알 수 있으리오. 이미 덕으로써 뽑을 수 없다면 또한 용모(容貌)로써 뽑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세종은 이어 “마땅히 처녀의 집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좋다고 생각되는 자를 예선(豫選)해서, 다시 창덕궁에 모아 놓고 뽑는 것이 좋겠다”고 밝혀 신하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429년 10월 세자(훗날 문종)의 두번째 세자빈으로 봉려(奉礪)의 딸을 간택하고 순빈(純嬪)으로 봉했다. 처음에 순빈을 들였을 때 세종은 휘빈의 사례를 생각해 다시는 문란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사(女師)에게 <열녀전>을 가르치게 하는 등 시아버지로서 온갖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순빈은 이를 배우기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책을 뜰에 던져버렸다. 그러곤 궁궐 안에서 술을 즐겨 마시며 자유분방하게 생활했다.

<세종실록> 1436년(세종 18년) 11월7일의 기록은 술주정이 매우 심했던 순빈 봉씨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성품이 술을 즐겨 항상 방 속에 술을 준비해두고는, 큰 그릇으로 연거푸 술을 마셔 몹시 취하기를 좋아했다. 혹 어떤 때는 시중드는 여종으로 하여금 업고 뜰 가운데로 다니게 하고, 혹 어떤 때는 술이 모자라면 사사로이 집에서 가져와 마시기도 했다.’

세자와의 사이도 좋지 않고 후사가 없자, 세종은 후사를 잇기 위해 세명의 여인을 세자의 후궁으로 뽑아 들이도록 했다. 그러자 순빈은 이들 후궁들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특히 후궁 중에 권승휘(權承徽·단종의 생모, 후의 현덕왕후)가 임신을 하게 되자 순빈은 더욱 분개하고 세자를 원망했다. 그는 급기야 스스로 상상임신을 해 태기(胎氣)가 있다고 말했지만, 이것마저 거짓으로 탄로나면서 신뢰는 한없이 무너졌다.

순빈 봉씨의 폐출에 결정적인 원인이 됐던 것은 동성애였다. 세자에게 버림을 받아서인지, 순빈은 궁궐의 여종 소쌍(召雙)을 사랑해 그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했다. 소문을 들은 세자는 어느 날 궁궐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소쌍에게 “네가 정말 빈과 같이 자느냐”고 물었고, 소쌍에게서 그렇게 했다는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세자는 순빈에게 강하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경고를 받은 이후에도 순빈은 소쌍이 잠시라도 곁을 떠나기만 하면 원망하고 화를 냈다. 이런 순빈과 소쌍의 스캔들은 궁중에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결국 세종은 소쌍을 불러 그 진상을 파악한 후 폐출을 결정했다. 1436년(세종 18년) 11월7일 세종은 사정전에서 전교를 내려 “하물며 지금 세자는 전에 김씨를 폐했는데, 또 봉씨를 폐하게 되니 이것은 나와 세자가 몸소 집안을 올바르게 거느리지 못한 소치다”라면서 신하들과 백성들에 대한 사과의 뜻을 표했다.

두 며느리가 엽기적인 행각으로 폐출되는 아픔을 겪은 세종은 세자의 후궁 중에서 검증된 인물을 발탁해 세번째 세자빈으로 삼았다. 승휘의 신분에서 세자빈에 오른 권씨는 왕실이 기대하는 대로 아들(훗날 단종)을 낳았으나 출산 후유증으로 불과 이틀 만에 승하했다. 그리고 세자는 이후에도 세자빈을 맞이하지 못했다. 조선의 왕 중에서 유일하게 재위기간에 왕비가 없었던 왕이 세종의 장자 문종이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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