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 역사산책]세종, 엽기적 주술 의지한 맏며느리 내쳐

입력 : 2019-04-03 00:00 수정 : 2019-04-03 23:27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10) 세종의 며느리 잔혹사<상>

맏아들 향의 세자 시절 세자빈으로 김오문의 딸 간택

세자 사랑 못 받은 김씨 무리한 압승술 쓰다가 ‘폐빈’
 


조선 왕실의 세자빈이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세자와 혼례를 올리는 것이다. 혼례의 첫 과정은 간택이다. 대개 세자의 혼인은 10세를 전후한 시기에 이뤄졌으니, 세자빈 또한 비슷한 또래의 처녀가 간택됐다.

성군인 세종에게도 며느리 간택문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조선 태조 대에 첫번째 세자빈부터 쫓겨나는 불미스러운 역사가 있었다.

1392년(태조 2년) 8월20일 태조는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후 유씨를 세자빈인 현빈(賢嬪)으로 봉했다. 그러나 현빈 유씨는 1393년 6월 내시 이만(李萬)과 불륜을 저질러 세자빈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또 태종 대인 1407년에는 김한로(金漢老)의 딸을 양녕대군의 세자빈으로 삼았으나 1418년 양녕대군이 세자의 자리에서 폐출되면서 세자빈 역시 대군 부인으로 신분이 강등됐다.

이런 전례를 참고해 세종은 장자를 후계자로 삼아 왕위에 올리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 세종은 누구보다 차기 왕비가 될 세자빈의 간택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세종은 맏아들 향(훗날 문종)의 세자 시절 김오문(金五文)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했다. <세종실록> 1427년(세종 9년) 4월9일의 기록에는 ‘김씨를 왕세자의 휘빈(徽嬪)으로 봉하였다. 임금이 원유관을 쓰고, 강사포를 입고 근정전에 거둥하여 문무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왕세자빈에게 책인(冊印)을 주었다’고 당시 성대했던 혼례식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세자와 세자빈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동궁의 시녀(侍女) 호초(胡椒)를 의금부의 옥에 가두도록 명하고, 휘빈 김씨를 사제(私第)로 내쫓았다’는 <세종실록> 기록에서 보듯 세자빈은 결혼 2년여 만인 1429년 7월 폐출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자빈이 궁궐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을까? 그 원인은 부부의 불화에서 시작된다. 세자는 휘빈 김씨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휘빈은 시녀 호초를 시켜 세자의 사랑을 얻는 방법을 알아보게 했다.

호초는 “남자가 좋아하는 부인(여자)의 신을 잘라 불에 태워 가루를 만들어, 그것을 술에 타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사랑을 받게 되고 저쪽 여자는 멀어져서 배척을 받는다”고 휘빈에게 전했다. 그러면서 세자가 가까이 하는 궁녀 효동(孝童)과 덕금(德金)의 신으로 시험해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기회를 쉽게 얻지 못하자 세자빈은 다시 다른 방법을 물었다. 이에 호초는 “암수의 뱀이 교접(交接)할 때 흘린 정기(精氣)를 수건으로 닦아서 차고 있으면, 반드시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기생 하봉래(下蓬萊)의 말을 들려줬다.

그렇지만 세자빈의 거동이 수상한 것을 파악한 조정에서는 행적을 조사했고, 세자빈의 집안 종이 숨겨놓은 잘라낸 가죽신을 찾아냈다.

세종이 왕비와 함께 세자빈을 불러 친히 자초지종을 묻자 세자빈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일일이 자복(自服)했다. 세종은 세자빈이 압승술(壓勝術·주술을 쓰거나 주문을 외워 사기(邪氣)를 눌러 없애는 방술)로 세자의 사랑을 얻고자 한 이 엽기적인 행각을 결코 좌시할 수 없었다.

결국 세종은 교지를 내린 후 세자빈 김씨를 폐빈(廢嬪), 서인(庶人)으로 삼아 집으로 쫓아 보냈다. 세종이 내린 교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자를 정하고 그 배필을 간택한 것은 진실로 장차 종묘의 제사를 받들며, 어머니로서의 궤범이 돼 만세에 큰 복조를 연장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김씨는 세자빈이 된 지 아직 두어해도 못되었는데, 그 꾀하는 것이 감히 요망하고 사특하다. 이는 조종(祖宗)의 신령이 흠향하지 않을 것이며 왕궁(王宮) 안에 용납할 수 없는 바이니, 도리대로 마땅히 폐출시켜야 할 것이다.’

세종이 심혈을 기울여 간택한 첫번째 세자빈은 세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압승술을 썼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결국 빌미가 돼 세자빈의 자리에서 낙마하게 됐다.

휘빈 김씨의 세자빈 폐출은 세종 며느리 잔혹사의 첫 시작일 뿐이었다. 이후에도 세종은 며느리 간택문제로 많은 고민을 떠안게 된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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