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문제없다” 업체 밀어붙이기…지역주민과 갈등 심화

입력 : 2019-03-13 00:00 수정 : 2019-03-13 23:48
충북 괴산군 괴산읍 신기리 등 5개 마을 주민들이 의료폐기물 소각장과 관련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유해·혐오시설로 병들어가는 농촌 (상)폐기물처리업체 피난처 전락

쓰레기 소각장·폐기물시설 등 주민 의견 무시하고 설치 강행

지역농산물 판매 악영향 우려 농민 등 대책위 결성·강력 반발

지역별 사업장배출시설 폐기물 대도시지역 처리량 16% 불과

인구 적고 인허가받기 쉬운 탓 소통 없이 일방 추진 ‘악화일로’

유해·혐오시설로 병들어가는 농촌우 폐기물처리업체 피난처 전락
 


농촌이 병들어가고 있다. 각종 쓰레기 매립·소각장은 물론 의료폐기물처리시설, 폐기물 재활용시설, 토양정화처리시설 등 수많은 혐오시설이 우후죽순 농촌으로 밀려들어오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폐기물처리과정에서 나오는 각종 유해물질은 농촌주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 유해시설이 들어선 이후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급격히 높아지기도 했다.

폐기물처리업체들이 해당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혐오시설 설치를 강행할 수 있는 것은 허술한 법시스템도 한몫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폐기물처리시설 설치를 놓고 업체와 해당 마을주민, 인허가를 둘러싼 지방자치단체간 갈등이 깊어만 가고 있다. 이에 <농민신문>은 3회에 걸쳐 농촌마을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폐기물처리업체의 실태를 점검하고 피해농민들을 현장취재해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머리띠 둘러맨 농민들=국내 유기농 1번지인 충북 괴산군 괴산읍의 신기리와 신항1·2리, 사창1·2리 등 5개 마을 주민들은 수개월째 생업도 포기한 채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립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곳은 200여가구 700여명의 주민들이 배추·고추·콩·옥수수 등을 재배하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당시 신기리에서 철근가공공장을 운영하던 A업체가 공장부지에 소각장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서를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한 게 발단이었다. 소각장은 하루 86.4t의 의료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로, 괴산·증평에서 하루 배출되는 폐기물 소각량(40t)의 두배가 넘는다.

주민들은 곧바로 ‘의료폐기물 소각장 반대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뒤 4개월째 A업체 진입로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천막농성 이후 주민들의 삶은 엉망이 됐다. 주민 상당수는 아침에 나왔다가 해질녘에 돌아가는 게 일상이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소각장이 들어서면 농사를 더이상 짓기 어려운 탓이다. 농민들은 “의료폐기물을 태울 때 나오는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은 청산가리보다 1만배나 독성이 강한 데다가 바람을 타고 20여㎞까지 날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각장이 들어서면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누가 사 먹겠느냐”고 성토했다.

하지만 원주지방환경청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폐기물 관련법에 따라 A업체의 시설장비와 인력·(폐기물)처리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합 판정을 내렸다는 이유에서다.

전북 임실군 신덕면의 농촌마을 주민들도 토양정화처리업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당 업체는 지난해 10월 오염된 흙을 정화처리한 후 판매할 목적으로 지역 내의 한 폐공장을 인수했다. 그 뒤 같은 해 12월 대구의 한 버스정비업소에서 반출된 토양(260t)을 이곳으로 반입했다. 이 흙은 중금속과 슬러지(기름찌꺼기)에 오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토양정화처리시설이 있는 곳은 임실의 농촌마을이지만 인허가를 내준 곳은 광주광역시다. 해당 업체의 본 사무소가 광주에 있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토양환경보전법상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자체장의 승인만 있다면 전국 어디서나 토양정화처리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설이 들어선 이후 신덕면 주민들은 ‘토양정화처리시설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해당 업체 대표는 “농민과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바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무조건 반대만 하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한철 수천리 마을이장(62)은 “정말 토양정화처리시설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자기들이 사는 동네에서 처리를 하지, 왜 이 먼 곳까지 왔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촌 파고드는 폐기물처리업체=소각장 등 폐기물처리업체 설립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는 전국의 농촌마을에 수두룩하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2018년 통계는 2019년 12월에 발표) 폐기물처리업체는 전국적으로 1만2000여곳에 이른다. 2016년에 비해 300곳가량 늘었다. 폐기물처리물량도 늘고 있다. 사업장배출시설 폐기물(폐합성수지·폐고무·폐금속·분진류 등)의 경우 2012년 하루평균 14만6000t에서 2017년에는 16만4800t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업체와 폐기물은 도시보다는 농촌지역으로 몰리고 있다. 실제 2017년 기준 지역별 사업장배출시설 폐기물처리현황을 보면 하루평균 전국 처리량 16만4800t중 서울과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등 대도시지역에서 처리한 물량은 전체 물량의 16.4%인 2만7100t에 불과했다.

생활폐기물도 5만3490t 가운데 대도시지역의 처리물량(매립·소각·재활용)은 40%를 조금 웃도는 2만2000여t에 그쳤다.

수치만 보면 폐기물처리업체들이 인구밀집지역보다는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인허가가 쉬운 농촌으로 몰려들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은 “혐오시설들이 (보는 눈이 적어) 관리가 허술하고 면적이 넓은 데다 인구가 적은 농촌으로 몰리고 있다”면서 “사회가 환경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폐기물시설 설치는 해당 지역주민들과 충분한 의사소통 없이 추진되다보니 그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괴산=김태억, 임실=황의성, 류호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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