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농작물 먹어치우고 사람 공격까지…“공포감 극심”

입력 : 2019-02-08 00:00 수정 : 2019-02-10 00:08
경북 예천군 예천읍 석정리 오윤섭 이장이 지난해 가을 멧돼지 피해로 쓰러져 수확을 제대로 못한 벼를 보여주고 있다.

야생동물의 습격…위협받는 농민들 (상)피해현황

경북 예천 고추 재배농민 멧돼지에 물려 목숨 잃어

사고현장 목격한 주민 “약 먹어도 잠 못 잘 정도”

제주선 들개 몰려다니며 반려견·가축 등 물어 죽여

몇년 새 야생동물 개체 급증 피해·도움 요청도 크게 늘어
 


야생동물이 농민들의 생계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먹이를 찾아 사람이 사는 곳까지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전국에서 피해가 이어졌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캐 먹는 것은 물론 가축을 물어 죽이고 사람도 다치게 한다. 최근에는 경북 예천에 사는 노모씨(65)가 멧돼지에게 물려 숨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사고에 대한 충격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야생동물 습격으로 인한 피해현황과 대책을 두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전쟁이 난 것보다 더 큰 공포감을 느껴요. 무서워서 맘 놓고 이웃집에도 못 가겠어요.”

1월29일 경북 예천군 예천읍 석정리 신리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입을 모았다. 이 마을에 살던 노모씨(65)는 1월23일 오후 7시 무렵 고추 지주목을 구하러 뒷산에 갔다가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사고 발생 후 일주일 정도 지났지만 마을주민들은 사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신옥임씨(59)는 “바람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다”며 “집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못 낸다”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사고 이전에는 주민들이 밤늦게까지 마을회관에 모여 놀았지만 요즘에는 해 지기 전에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고현장을 목격한 박연옥씨(56)는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고 있다”면서 “끔찍한 사고현장이 아직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잘 정도로 괴롭다”고 말했다.

신리마을은 봉화산(336m) 산기슭에 위치한 데다 27가구 중 10가구가 외딴집일 정도로 야생동물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전기철책선을 설치하지 않은 논밭의 주인들은 멧돼지나 고라니 등 야생동물 때문에 농사를 포기할 정도다.

박연옥씨는 “고구마 같은 맛있는 작물은 귀신같이 알고 캐 먹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노씨의 생명을 해친 것으로 추정되는 멧돼지는 이틀 뒤 사살됐다. 잡힌 멧돼지는 몸무게가 150㎏으로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 손가락만큼 굵어 주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멧돼지를 잡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윤섭 석정리 이장(61)은 “수렵단체가 최근 열화상 카메라로 조사한 결과 마을 뒷산에 멧돼지 20여마리가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제주에서는 들개가 농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종종 반려견이나 가축 등을 공격하는데 언제 사람에게까지 해를 입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축산농가가 많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일대에는 들개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이 지역 강승모씨(52)의 축사에 들개 10여마리가 들어와 송아지 두마리를 죽이기도 했다. 강씨는 “송아지 무게가 100~300㎏에 달하는데 들개가 떼로 달려드니 별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라면서 “웬만한 성인 남성도 들개떼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해 전에는 서귀포시 남원읍 한 초등학교에 들개떼가 들어와 동물체험장에 있던 토끼와 닭을 물어 죽인 일도 발생했다.

이 때문에 들개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불안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경철 금악리 이장(52)은 “주민 가운데는 들개가 무서워 밤에 잘 다니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의 위협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개체수가 급격히 늘면서 전국에서 야생동물이 심심찮게 출몰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포획된 멧돼지는 4만8947마리나 된다. 2015년(2만1782마리)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 3명이 멧돼지에게 공격받아 숨졌으며 7명이 다쳤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멧돼지와 관련된 119 출동은 월평균 238건에 달했다.

들개의 개체수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유기견이 늘면서 관련 피해접수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전남소방본부에 따르면 들개 출몰로 피해를 보거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한 건수가 지난해에만 2688건으로 2016년(1693건)에 비해 1000건 가까이 늘었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 부회장은 “동물은 번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특별한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는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야생에서 지내다 겨울이 돼 먹을 것이 귀해지면 농작물이나 가축은 물론 사람까지 위협할 수 있다”며 “멧돼지나 들개 같은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천=오현식, 제주·서귀포=김재욱, 장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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