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레오가 찾은 백년의 맛] 소복이 담긴 종가의 기품

입력 : 2018-11-05 00:00 수정 : 2018-11-05 23:55

강레오가 찾은 백년의 맛, 종가는 맛있다 (17)수원 백씨 인재종가

제철 가을무로 만들어 먹는 ‘한채’

채 친 무, 소금·식초·설탕에 절여 새콤달콤한 맛에 품위 넘치는 외양

기름기 없는 쇠고기로 만든 ‘맛나지’

홍두깨살 결대로 썰어 볶아낸 후 조선간장에 조려낸 종가표 장조림

쇠고기·백합으로 만든 별식 ‘생합작’ 곡창지대 만석꾼 집안의 특색 가득
 


“전주는 맛의 고장이잖아요. 그러니 전주에 있는 종가음식은 얼마나 특별하겠어요. ‘학인당’이라고 유명한 한옥 고택이 전주에 있는데, 그곳이 수원 백씨 인재종가라네요. 한번 찾아가 보죠.”

급한 마음에 발걸음도 빨라진 강레오 셰프를 따라 전북 전주로 향했다. 강 셰프가 이야기한 학인당은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 안에 있다. 새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 삼아 펼쳐지는 검은빛 기와지붕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 그곳이 학인당이다.



삐그덕. 세월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나무대문이 열리고 빨간 저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했노라 전화를 넣자 종종걸음으로 마중 나온 서화순 종부(59)다.

“어서들 오세요. 들어오셔서 집 구경 먼저 하세요. 고종 때 인재 백낙중 할아버지가 지으신 한옥인데 당시로서는 신식 건물이었죠.”

종부의 안내로 돌아보니 건물을 둘러싼 유리문과 2층 높이 층고, 널찍한 대청마루 등 그동안 다녔던 고택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종부 말대로 ‘백년 전에 신식이었던’ 고택을 둘러보다보니 이 댁의 내림음식에 대한 기대가 새삼 솟았다. 집 짓는 데 2년8개월이 걸렸고 벼 8000가마, 공사인원 4280명을 동원했을 정도로 인근에 소문난 만석꾼 집안이었다고 하니 먹거리는 얼마나 화려했을까.

 


종가의 가을을 알리는 한채

“그때는 그랬다고 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재산도 많이 사라졌어요. 특히 전주는 구한말에 서학이 득세했고 동학운동의 본거지에서 가까웠던 탓에 종가가 살아남기 힘든 지역이었거든요. 실제로 인근엔 남아 있는 종가가 거의 없어요.”

세월의 부침에 따라 종가 살림규모도 달라졌고 밥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옛 습관은 남아서인지 저희 시아버님은 쇠고기가 없으면 밥을 드시지 않으셨어요. 옛날 어른들 말로 ‘소증 난다’ 그러셨죠. 요즘 말로 2% 부족하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희 집에서 하는 모든 음식에는 다진 쇠고기가 들어갔어요. ‘우름’이라고 불렀는데 어떤 음식에든 한덩어리를 꼭 넣었죠.”

쇠고기만 즐겨 먹은 것은 아니었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제철 맞은 참게로 장을 담갔다. 잘 손질한 참게에 간장을 부어 며칠 동안 뒀다가 간장을 따라내서 달인 뒤 다시 부어 숙성시킨다. 잘 숙성된 참게는 꺼내서 참기름·마늘·쪽파 등을 넣고 양념해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뒀다가 어른 밥상에 올렸다. 간장은 양조간장 말고 반드시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을 사용해야 제맛이 난다는 게 종부의 말이다. 집간장과 참게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그 깊은 감칠맛을 요즘 흔한 꽃게장은 따라올 수 없다고.

“가을에 흔하게 먹는 음식으로는 한채가 있어요. 채 친 무를 소금·식초·설탕에 절여서 차갑게 먹는 음식이라 이름이 한채예요. 제철을 맞아 달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가을무를 활용하는데, 만들기도 어렵지 않고 접시에 담아내면 품위가 있어서 저는 물론이고 저희 시어머니도 참 좋아해요.”

만드는 법은 이렇다. 가늘게 채 친 무를 소금에 살짝 절인 뒤 편으로 썬 밤과 마늘, 채 썬 생강, 실고추나 채 썬 대추, 쪽파, 그리고 석류알을 넣어 섞어준다. 식초와 설탕을 같은 분량으로 넣어 새콤달콤하게 간을 맞추면 끝이다. 바로 먹어도 맛있지만 냉장고에 넣고 하루 정도 숙성시켜서 먹으면 더 맛있다.

“채 친 무를 소금에 절이면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을 버리지 않고 다 사용해야 맛있어요. 그러니까 간이 짜지 않도록 처음부터 소금양을 잘 조절하는 것이 맛을 내는 포인트죠. 생강도 넉넉하게 넣어야 맛있어요.”
 



종가표 장조림 맛나지와 귀한 생합작

한채 외에도 이 종가만의 특별한 음식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강 셰프의 청에 종부가 잠시 생각에 빠진다.

“맛나지가 특별할까요? 일종의 장조림인데 우리 집에서 많이 해먹던 음식이에요.”

종부의 설명에 따르면 맛나지는 장조림과 비슷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다르다고 했다. 쇠고기 중에서도 기름기 없는 홍두깨살이나 치마살을 골라 결대로 썬 뒤 한번 볶아낸다. 간장과 꿀·참기름을 넣고 조리다가 마지막에 통마늘을 첨가해 좀더 조리면 완성된다. 간장은 역시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을 쓴다. 오래도록 보관해두고 먹기 위한 일종의 저장음식이다.

“맛나지를 만들려면 꼭 쇠고기를 결대로 썰어야 해요. 저희 시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인데, 결대로 썰지 않으면 조리과정에 재료 모양이 망가져서 음식이 지저분해지거든요. 결대로 썰어야 처음 모양 그대로 유지돼서 단정한 음식이 나오죠. 마늘을 통으로 맨 마지막에 넣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일찍 넣으면 뭉개져서 지저분해진다고요.”

특별한 날 해먹는 별식으로는 생합작을 꼽았다. 백합 조개와 쇠고기·표고버섯·호박·당근 등을 다져서 볶은 뒤 백합 껍데기에 넣어 속을 채우고 달걀옷을 입혀 팬에 지져낸다.

“인근에 있는 김제가 백합으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백합과 쇠고기를 합한 생합작을 해먹은 것 같아요.”

백합과 쇠고기라니. 지금이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귀한 식재료였을 테다. 곡창지대 전주를 호령하던 만석꾼집안의 음식답지 않은가.

전주=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도전!강레오 셰프의 종가음식 한채를 곁들인 ‘쇠고기 편채’

 

서화순 종부의 한채를 맛본 강레오 셰프는 바로 쇠고기와의 궁합을 떠올렸다. 종부의 레시피를 살짝 바꿔 쇠고기와 딱 어울리는 강 셰프표 한채를 만들어 쇠고기에 곁들이기로 했다. 싱싱한 쇠고기 등심 표면에 겨자소스를 살짝 바르고 베이컨으로 감싸 모양을 만든 뒤 얇게 편으로 썬다. 무, 붉은 고추, 대파 흰부분을 채 썬 뒤 식초·설탕에 버무린다. 생강 대신 채 썬 유자껍질을 넣고 트러플 오일을 곁들인 것이 강 셰프표 한채의 특징. 쇠고기 편채에 한채를 넣고 싸먹으면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이라고.

 


 

수원 백씨 인재종가는 조선 승훈랑 영릉참봉 백낙중 후손

 

조선 고종 때 승훈랑(承訓郞) 영릉참봉(英陵參奉·세종대왕과 소헌황후의 합장릉인 영릉을 지키는 벼슬아치)을 지냈던 인재(忍齋) 백낙중의 후손이다. 인재가 고종의 허락을 받아 지은 99칸짜리 한옥이 현재 후손들이 살고 있는 학인당(學忍堂)이다.

학인당에는 복도가 설치됐고 유리로 만든 여닫이문과 서재·세면장·목욕탕·화장실도 갖췄다. 당시 서양에서 들여온 첨단시설인 전기·수도 시설을 도입한 개화기 최신식 한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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