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한정무의 ‘꿈에 본 내 고향’ 눈 감고 고향 그리네…실향민 애환 절절

입력 : 2018-06-27 00:00 수정 : 2020-06-25 19:41

이 곡은 한국전쟁 실향민의 망향가이자 가수 한정무가 본인 신세를 읊은 한탄이다. 노래 속 배경은 1·4 후퇴 무렵이다. 국군과 국제연합(UN)군은 1950년 12월 평양 철수, 대동강 철교 폭파, 흥남 철수로 후퇴작전을 이어간다. 당시 32세 한정무는 평양에서 혈혈단신 후퇴 대열에 휩싸여 부산으로 흘러든다. 그리고 실향민의 향수(鄕愁)를 부채질한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한정무 ‘꿈에 본 내 고향’ 1절)




1953년 박두환이 엮은 서사에 김기태가 곡을 얹었다. 노래를 들은 실향민들은 절절하게 감응했다. 노래 주인공 한정무는 꿈에 그리던 고향을 가보지 못한 채 1960년 교통사고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전세계 75억 인구가 공통으로 가슴속에 품고 사는 단어는 ‘어머니’와 ‘고향’ 두 글자다. 먼 옛날 같지만 가까운 우리의 현대사에도 고향땅을 떠나 오랜 기간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있었다.

1963년 독일에 파견할 광부 500명을 모집했는데, 4만6000여명이 몰렸다. 남한인구가 2400만명, 실업자 250만명이었던 시기였다. 매월 600마르크(당시 1마르크는 한화 약 180원)를 받는 직장에 지원자가 밀려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1000~3000m의 막장에서 1m를 파고들어갈 때마다 4~5마르크를 받았다. 1966년 12월 3년 계약기간을 채우고 142명의 파독 광부 제1진이 귀국했을 때 대부분이 1회 이상 골절병력을 안고 있었다.

파견 간호사 사정도 비슷했다. 1970년대 중반 서베를린에는 2000명이 넘는 한국 간호사가 있었다. 1966∼1976년 독일로 건너간 간호사는 1만여명, 광부는 1963∼1978년 7800여명이었다. 독일로 건너간 이들은 단 하루도 ‘꿈에 본 내 고향’을 웅얼거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지금은 케이팝(K-pop) 시대다. UN에 가입한 193개국을 중심으로 가는 곳마다 우리 겨레가 살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망향가를 부른다. 그들이 부르는 노랫가락이‘제2의 꿈에 본 내 고향’인 셈이다.

유차영<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한국콜마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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