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문주란의 ‘눈물의 북송선’

입력 : 2018-01-17 00:00 수정 : 2020-06-25 19:49

부모·형제 일본에 두고 떠나는 생이별의 회한

 


이 노래는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착각해 찾아가는 사람들을 실은 만경봉호(萬景峰號)의 사연에 관한 곡이다. 만경봉호 운항은 1959년 12월14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재일교포들을 싣고 일본 니가타항을 출항해 북한 청진항으로 향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1976년 박춘석이 작사·작곡한 노래가 문주란의 저음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바람도 차가운 부두 이 밤도 깊어가는데
내일이면 떠나간다 한 많은 북송선
부모·형제 타국 땅에 버리고
가슴 아픈 두번 이별에 아~목이 메인다
속아서 떠나가는 눈물의 북송선
(‘눈물의 북송선’ 1절)



만경봉호는 대동강변에 있는 ‘일만가지 경치가 보인다’는 봉우리 ‘만경봉’ 이름을 딴 북한 화객선(貨客船)이다. 청진항 선적인 이 배는 재일교포 북송(北送)의 대명사로, 한번 운항에 승무원 80여명과 승객 300여명을 태울 수 있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한 응원단이 타고 왔던 배다. 그러다 2006년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서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만경봉호는 일본 니가타항에서 북한 청진항까지 47년 동안 300여회를 왕복하며 9만3000여명을 북송했다. 북송자는 주로 공장 근로자, 상공업 종사자, 학생 등이었으며, 재일교포 일본인 처(妻)도 있었다. 북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본명 고영자)도 1961년 이 배를 타고 간 여인이다.

조총련 재일교포들은 꿈에서도 그리던 고향, 북한이 선전하던 지상낙원으로 돌아간다는 환상에 젖었다. 일본 당국은 골치 아픈 조총련계를 북한으로 보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북한은 조총련 재일교포를 외화유입과 대남공작 요원으로 활용할 속셈이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셈법으로 계산된 사업은 1955년 북한 외상 남일(6·25전쟁 때 북한군 총사령관)이 발의, 1958년 9월8일 ‘재일교포의 귀국을 환영한다’는 김일성 성명으로 표면화됐다. 이어서 1959년 8월13일 북한과 일본 적십자간 캘거타(인도)협정이 체결됐다.

당시 27세였던 문주란(본명 문필련)은 1950년 부산에서 출생해 16세에 유명가수 반열에 올랐다. 처음 노래한 곳은 부산의 음악감상실인 ‘그린하우스’였다. 그는 부산예술학원에서 현철·서용수 등과 함께 노래를 배운 뒤 부산 쇼단원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다. 그리고 1962년 부산MBC 가요콩쿠르에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의 매력은 남자보다 더 내려가는 저음. 성격도 털털해 그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수들을 ‘형’이라고 불렀다.

유차영<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한국콜마(주)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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