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책방지기의 마음을 담은 책] 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

입력 : 2017-11-17 00:00 수정 : 2018-03-02 17:57

생산·수확을 자연에 맡긴 농부들의 이야기

자연농법 실천·교육하는 한국·일본·미국 농부들의 건강·행복한 삶의 방식 담아

 

강수희, 패트릭 라이든 지음/열매하나/1만7000원/☎02-6376-2846



비록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농촌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땅과 식물, 과수와 작물의 한해살이를 알게 됐다. 작은 텃밭을 꾸리면서 시시때때 병충해를 경험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풀들이 자리를 넓혀가는 걸 보면서 슬금슬금 ‘약’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사람 마음은 엇비슷한지 선녀벌레에 한철 수고를 다 빼앗기게 생긴 이웃 어르신은 밤에 몰래 마당에 나와 약을 치기도 하고 슬그머니 제초제도 뿌리신다. 여럿이 모여사는 데다 명색이 친환경마을을 내걸고 있으니 이웃집 눈치가 보여 차마 낮에 맘껏 약을 치지 못하는 것인데, 그 맘을 백번 이해하면서도 썩 흔쾌하진 않다.

유기농업이 왜 좋지 않겠냐마는, 산업화시대 이후 이미 대량생산과 화학비료의 놀라운 효능을 정부의 지도·감독 아래 경험해버린 농사현장에서 자연농법으로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편에서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고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농법을 실천·교육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는 바로 이런 질문을 들고 한국과 일본·미국에서 자연농을 실천하는 농부들을 만나 답을 찾아보려 한 이야기다. 책에는 모두 11명의 농부들을 소개했는데 강수희, 패트릭 라이든 두 저자는 이들 농부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가꾼 풍요로운 농장을 촬영해 6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울과 교토를 비롯한 세계 곳곳 도시에서 상영회를 열고, 자연농이라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방식에 대해 독자들과 교감했다.

목차를 살피다보니 소제목들을 소리 내어 한줄 한줄 읽어보고 싶어졌다.

“풀과 벌레와 싸우지 않습니다. 즐겁고 뜻있게 사는 인생을 꿈꿉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신성한 어머니, 대지를 섬깁니다. 따뜻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밭에서 식탁으로 가는 거리를 줄입니다.”

이 글줄이 그저 빈말이 아니라 울림을 가지는 건 한줄 한줄이 모두 자신의 삶과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리라.

강원 홍천에서 자연농을 가르치는 ‘지구학교’의 최성현 농부는 “자연농을 통해 원래 천국이었던 지구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스승으로 삼은 이는 <짚 한오라기의 혁명>의 저자이자 일본에서 ‘4무 농법’으로 불리는 자연농법을 창시한 후쿠오카 마사노부다.

땅을 갈지 않는다는 무경운·무비료·무농약·무제초의 4무 농법은 인간이 생태계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원으로서 모든 생산과 수확을 자연 그대로의 순환에 맡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미 근대화·기계화된 기존의 농법을 완전히 뒤엎는 개념이어서 조금이라도 농사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자연농의 원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자연농을 실천하고 교육하는 이들은 대개 다른 삶을 살다가 뒤늦게 농업을 선택한 이들이다.

일본 후쿠오카에 사는 가가미야마 에쓰코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 자연농을 선택하게 됐다. 고베에 사는 나카노 신고 씨는 1995년 고베 대지진을 겪은 이후로 가치관이 변해 환경평화운동을 시작했고 자연농에까지 이르렀다. 이들의 출발엔 공통점이 있다. ‘걱정만 하며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건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자각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직접 바꿔나가야만 한다는 깨달음이 자연농으로 이어진 것이다.

세계사의 큰 흐름을 뒤엎기엔 너무 작고 낮은 목소리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기 자리를 붙들고 서서 해내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천국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복원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못다 읽은 목차의 뒷부분들을 마저 소리 내어 읽어본다.

“많이 거둘 순 없지만 진실을 거둡니다. 먼저 나 자신을 바꿔야 세상도 변합니다. 자연이, 지금 이 순간이 정답입니다.”

백창화(북칼럼니스트, ‘숲속작은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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