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가 만난 사람]암치료의 권위자 박재갑 서울대의대 외과 교수

입력 : 2013-04-15 00:00

“암은 치료보다 근본적 예방이 중요
건강한 100세 시대 제대로 즐기기 위해
운동화 신고 출근하며 생활속 운동 실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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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동안 암과 씨름했다. 대장암 환자 수술만도 7000여건에 이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대장암 명의(名醫)’ 혹은 ‘세계적인 암 권위자’라고 부른다. 바로 우리나라의 암 치료와 연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박재갑 서울대의대 외과교수의 얘기다. 서울대암연구소에서 암 연구에 몰두하는 박 교수는 8월에 정년퇴직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암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그의 사명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암 치료보다 근본적인 암 예방이 더 중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수술 등으로 틈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농민신문> 독자를 위해 시간을 낸 박 교수를 암연구소에서 만났다.



박 교수는 현재 자신이 몸담은 서울대 암병원 1~3층에 유화 14점과 사진 14점을 전시해 놓고 있다. 해바라기를 향해 날아가는 벌을 주제로 한 ‘상생(相生)’, 금불초에 머무르는 나비의 모습을 찍은 ‘상존(相存)’이라는 작품을 비롯해 모두 28점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덕분에 암병원의 분위기는 한결 아늑하게 바뀌었다. “정년퇴임하면 취미가 있어야만 한다며 아내가 2년 전 그림을 권해 그린 작품들입니다. 사진은 2005년부터 야생화와 산새를 렌즈에 담고자 찍었던 것이고요. 뭐 실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림과 사진을 이렇게 많은 분과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돼 뿌듯합니다.”

그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면서 서로 돕지 않으면 모든 생명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단다. 또한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그 섭리의 오묘함을 보다 실감할 수 있었단다. 때론 0.1~0.2㎜의 실핏줄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직업적 특성은 그의 사진과 그림 속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만큼 그의 사진과 그림은 찰나의 상황을 잘 묘사했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의사로서의 삶으로 이어졌다. “사실 타고난 의사는 아니에요. 배곯지 않으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과 형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외과의사를 택한 것 뿐입니다. 대장암을 전공하게 된 것도 외과 전공의 시절 지도교수님(고 김진복 교수)이 위암분야에서는 권위자이다 보니 중복을 피하려고 대장암 쪽을 권해 정하게 된 것이지요.”

박 교수는 가족력이나 유전자 변이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대장암과 종양 등에 대해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38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25권의 책을 집필했다. 2008년 미국대장항문외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은 최우수상을 받았을 만큼 뛰어났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의 생명을 구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명의’라는 별칭도 환자들이 지어준 것이다.

박 교수의 능력이 더욱 빛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서울대암연구소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엔 암 치료나 예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때였어요. 그때부터 암의 심각성을 알리고 환자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어요. 그래서 암 검진사업과 지역암센터 설립 등이 담긴 암 정복 10개년 계획을 입안하고 암관리법 제정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이로 인해 지금은 소득수준 하위 50%는 무료로, 소득수준 상위 50%도 비용의 10%만 내면 5대 암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끔 암 검진으로 암을 조기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람이 아주 커요. 모두 암 검진 꼭 받으셔야 합니다.”

특히 박 교수는 암 연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는 세포주를 수백종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세포주은행을 설립해 세계 5대 세포주은행으로 키웠다. “암은 다른 어떤 병보다도 유전적인 특징과 관계가 큽니다. 유전성 암 치료와 진단을 위해 한국유전성종양등록소를 만들어 연구하는 것은 꼭 필요했지요. 그래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4000만달러를 기증받아 서울대암연구소 삼성암연구동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세계의 암 연구와 치료를 사실상 주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우리나라와 같이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는 군대를 유지하는 게 불가피합니다. 이 때문에 총상과 화상 등을 치료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국군병원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현직에 있을 때 이를 마무리 짓지 못해 마음이 무거운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간다면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봅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초대원장을 맡으면서 혁신적인 병원경영으로 많은 화제를 낳기도 한 박 교수. 그는 의학부문에서 누구도 오르기 어려운 세계 정점에 섰다. 그는 현재 다소 의외이지만, 전 국민의 금연을 실현하는 것을 역사적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담배만 피우지 않더라도 암사망자의 30%, 폐암 사망자는 85%까지 줄일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다.

“사실 흡연의 심각성을 인식한 지는 오래됐습니다. 13년 전에 담배의 제조 및 매매가 금지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법제정을 요구했지만 국회에서 검토가 안 되더군요. 호주는 2025년을 기해 흡연율 제로에 도전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이젠 금연 관련 법제정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헌법소원까지 해 놓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그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흡연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1년에 우리나라만도 5만명, 세계적으로는 600만명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안 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 큽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지만, 이러한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운동, 줄여서 ‘운출생운’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인들은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운동량을 보충하려면 생활 속에서 신체활동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운동화를 신고 생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합니다. 아무리 생명이 늘어나 100살까지 살면 뭐합니까.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해야 하잖아요. 꼭 운동화를 신고 생활해 보세요.”

너무 짜거나 매운 음식을 피하고 청국장 등 발효식품이나 비빔밥과 같이 영양이 골고루 들어 있는 음식을 생활화하는 것이 몸에 좋다고 밝히는 박 교수. 기본상식만 잘 지켜도 암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그는 요즘 불교·기독교·가톨릭·유교 등 종교계는 물론 문화계·경제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하고 있다. 이 시대의 화두인 상생과 화합을 위해서이다. 이런 모임을 통해 인문학으로의 지평도 넓히고 있는 박 교수는 이 시대에 다시 만나기 어려운 명의이지만, 사회를 바꾸는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재갑 교수는 1948년 충북 청주 출생. 경기고를 거쳐 1973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임용된 뒤 국립암센터 1·2대 원장, 아세아대장항문학회 회장, 국립중앙의료원 초대원장 겸 이사회 의장, 세계대장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금도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 한국종교발전포럼 회장, 충북도명예지사, 경동대 명예총장을 맡고 있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황조근정훈장(2001), 자랑스런 한국인대상(2004), 세계금연지도자상(2005), 대한민국친환경대상(2012) 등을 수상했다.

김기홍 기자 sigmaxp@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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