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화금융사기 여전히 활개…이제 그만 당하자
세상 참 요지경이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가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을 속이는 수법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면서 이제는 피해자가 은행에서 현금을 찾고, 대출까지 받아 사기범들 손에 직접 쥐여 주니 황당하다. 남 일이라고 가볍게 여길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도 피해자들이 숱하게 생겨나고 있다. 2006년 처음 발생한 보이스피싱 누적 피해금액은 지난해 기준 4조원을 훨씬 웃돈다. 2022년 1건당 평균 피해금액은 2500여만원이나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것은 꾸준히 증가하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정부의 적극적인 단속과 금융기관·통신사 등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난해 피해건수는 2만1832건, 피해금액은 5438억원에 달하니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소상공인 정책자금 지원, 택배 배송시간 안내문자, 대출 상환 독촉, 자녀 납치 등 시류에 맞춰 다변화해 자칫 방심했다가는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대목은 농촌지역 어르신들이 사기범들의 주요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혼자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어르신들은 휴대폰 등 전자기기 사용이 서툰 데다 상황별 대처 능력마저 떨어져 범죄에 매우 취약하다. 젊은이들도 당하는데 농촌 어르신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건수 가운데 60세 이상 고령층의 피해비중은 2018년 11.7%에서 지난해 20%로 갑절 가까이 증가했다. 농촌지역의 경우 지역농협 등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예방교육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르신들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자기 재산은 본인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타인이 신분증이나 개인정보 등을 요구하면 절대 응해선 안된다. 자녀의 신변에 이상이 있다는 협박을 받는다면 해당 가족과 통화를 하는 것이 필수다. 검찰과 경찰은 어떤 경우에도 계좌이체나 현금인출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정부도 보이스피싱 범죄가 더이상 활개 치지 못하도록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갈수록 지능화하는 신종 수법 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대국민 홍보활동에도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사설] 꼬리 무는 ASF…농가·당국 모두 방역의식 느슨해졌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또 발생했다. 올해 들어 5번째다. 2019년 국내 첫 발병 이후 내려진 ASF 위기 단계 ‘심각’이 여전히 유지돼 대규모 확산은 막고 있지만 잠잠해질 만하면 터지니 전국 양돈농가들이 애가 단다. 현대 과학으로는 집요하게 돼지들을 노리는 바이러스의 전파 메커니즘을 정확히 규명할 수 없고 아직 원천 차단하는 기술이 없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이번 발생은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의심축 또는 폐사체가 한두 내지 수마리 신고되던 이전과 달리 50마리가 나오도록 농가는 뭘 했으며, 발생지인 경기 포천이 당장 1월에도 발병했던 곳이라 각별히 관리해야 함에도 왜 방역당국은 사태가 또 터지도록 놔뒀느냐는 것이다. 시쳇말로 농가와 당국 모두 나사가 좀 풀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8∼19일 이틀에 걸쳐 돼지가 폐사했는데도 해당 농가는 19일 저녁이 돼서야 신고를 했다고 한다. 더구나 이번에 발생한 지역은 발병 농장 반경 10㎞ 내에 80농가가 약 18만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는 대규모 양돈단지다. 확산하면 돼지 수급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마릿수가 많다. 방역당국의 관리 소홀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ASF는 모두 경기 북부, 인천 강화, 강원 등 접경지에서 발생한 만큼 이 지역은 계속 특별 관리를 했어야 마땅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위기 단계를 ‘주의’로 낮추고 잔반 급여 허용을 검토한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발생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방역 완화는 한마디로 섣부르다. 바이러스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겨울을 나며 중국에 다시 ASF가 확산하고 있듯 우리도 긴장을 늦추면 바이러스가 금방 준동할 것이다. 가축질병 예방의 기본은 농장 방역이며 발생 시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는 조기 차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돈농가들은 농장 소독과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고 동업자 정신에 입각해 초동 대처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당국 역시 누적된 피로를 모르는 바 아니나 자칫 방심했다간 지금까지의 고생이 도로아미타불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동필의 귀거래사] 농사철 맞은 농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경칩이 지나면서 훈풍이 불어오니 마당 한구석의 산수유며 매실나무며 꽃이 피고, 모과나무 등걸에서도 어린싹이 얼굴을 내민다. 산중이라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니 봄이 오기는 오는가보다. ‘반갑다 봄바람이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한다. 개구리 노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나니 버들빛 새로워라. 보쟁기 차려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200년 전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2월령인데 그 무렵 봄에 심던 보리와 목화·담배, 그리고 뽕나무 등은 찾아보기 힘들고 재를 모아 퇴비를 만들거나 씨암탉에 알을 품게 하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농사가 전업화하면서 재배하는 작목수가 줄고 대부분의 농자재도 시장에서 구입해 쓰기 때문이다. 축산과 비닐하우스가 늘어나면서 농한기가 따로 없지만 우리 지역은 요즘 마늘 유인작업이며 과일나무를 관리하느라 바쁘다. 많은 비용을 투입해서 고생한 만큼 소득이 돼야 할 텐데 워낙 비료·농약·기름값이 오르고 일할 사람마저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니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며칠 전 이웃 마을 숙모에게 농사가 어떤지 물었더니 지난해는 고추농사 열마지기에 농약값만 600만원, 여기에 인건비 1000만원과 비료값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지만 그게 농촌에서의 삶이 아니냐며 어색하게 웃으신다. 사실 영농방법이며 농기계가 발달돼 예전에 비해 노동 강도는 한결 낮아졌다. 하지만 여느 직업과 달리 자연에 의존하다보니 때에 맞춰 비배관리 하고 제초와 병해충 방제를 하지 않으면 기대한 수확을 할 수 없고 투입비가 늘어난 만큼 돈을 만들기는 더욱 어렵다. 강희맹이 쓴 <금양잡록> 서문에 ‘사농공상 네가지 백성 중에 오직 농민만이 가장 괴로우니 추울 때도 갈고 더워도 김매어 몸에 땀이 흐르고 발에 흙칠을 하며 일년 내내 부지런히 움직여도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지 못한다’면서 그럼에도 이 일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 까닭은 농사가 근본이기 때문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농사철이 시작되면 임금이 발표한 <권농문>에 따라 농사를 독려하는 것을 고을 수령의 가장 큰 일로 삼았다. 태조 때부터 순종까지 역대 임금들은 경칩 이후 첫 돼지날 선농단에 제사를 올리고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의 소중함과 농민에 대한 고마움을 알렸다. 1444년 세종대왕이 내린 <권농교서>에는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삼나니 농사는 의식의 근원인지라 왕정의 우선되는 바라’며 밝히고 백성들이 농사에 힘써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윗사람이 먼저 실천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농촌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농업·농촌 본래의 역할은 변함이 없는데 농업과 농민을 바라보는 위정자나 국민의 시각은 크게 달라진 것 같다. 성공한 농민이 돈을 번 이야기는 자주 하면서 정작 논밭에서 묵묵히 일하는 보통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이들을 천하의 근본이라 믿어주던 사회적 분위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 철이 되어 다시 들판으로 나서는 농부의 처진 어깨를 보면서 권농사(勸農辭) 삼아 조지훈의 ‘농민송(農民頌)’ 한 구절로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겨레를 위하여 가장 많이 일하고도 가장 버림받고 시달린 사람들이여!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와 마당가 멍석자리 삽살개와 함께 저녁을 나눠도 웃으며 일하는 마음에 복은 있어라’. 스마트농업 시대라지만 일을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는 마음과 이를 믿어주는 국민의 응원이 중요하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지훈의 경제이야기] (122) 레고랜드 사태와 채권시장
“레고랜드의 2000억원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가 가뜩이나 얼어붙은 채권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레고랜드 사태가 요즘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자산유동화기업어음처럼 암호 같은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도대체 무슨 뜻일까. 레고랜드는 강원 춘천에 건설된 테마파크로 5월에 개장했다. 이 사업의 추진을 위해 ‘강원중도개발공사’라는 부동산 시행회사가 설립됐는데 강원도(지분 44%)와 멀린엔터테인먼츠그룹(23%)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출자금으로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외부 자금을 끌어오게 되는데,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이를 위해 ‘아이원제일차’라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했다. 아이원제일차가 어음을 발행해 매각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나서 그 돈을 다시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빌려주는 방식이다. 특수목적법인을 끼워서 2단계로 돈을 빌리는 이유는 강원중도개발공사의 다른 법적 관계(채권·소송 등)와 분리하기 위해서다. 만약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다른 이유로 파산하더라도 그 위험에서 분리될 수 있다. 특수목적법인인 아이원제일차는 10개월짜리 어음을 발행했고, 여러 투자자에게 매각했다. 투자자들은 그 어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레고랜드 사업에 종잣돈을 댔다. 이런 경우에 발행하는 어음을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이라 부른다. 기업에서 현금이 부족할 때 가진 자산을 현금화(유동화)하기 위해 발행한다고 해서 ‘유동화’라는 이름이 덧붙는다. 레고랜드의 경우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레고랜드를 개발해 얻게 되는 수입이 담보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만 믿고 투자하기엔 불안하다보니 강원도가 보증을 서서 신용도를 높여줬다. 또 하나 문제는 부동산 개발사업은 몇년간 지속되는데 어음은 만기가 1년 이내라는 점이다. 그래서 만기가 되면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갚고 나서 같은 금액의 어음을 다시 발행해 매각하는 방식으로 돈줄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 이렇게 어음을 발행해 조달한 돈이 2050억원이었고, 어음의 만기가 2022년 9월29일에 닥치게 돼 있었다. 문제는 레고랜드가 개장했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수입으로 채무를 갚을 능력이 안됐다는 점이다. 보증을 선 강원도가 채무를 대신 갚아야 하는데 강원도는 다른 선택을 한다. 어음 만기 하루 전날,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 회생을 법원에 신청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기업 회생이 받아들여지면 채권자는 언제 돈을 받을지 모르게 된다.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다. 이에 주간 증권사인 비엔케이투자증권은 강원도에 채무를 즉시 상환하라고 요구했지만 강원도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2050억원의 어음은 결국 부도 처리됐다.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채권 즉 지방채는 국가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부도날 리 없는, 국채에 준하는 신용도를 가지는 것으로 간주돼왔고 이번 건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무도 비슷하게 여겨져왔다. 그런데 이런 채권마저 경우에 따라 부도가 날 수 있다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됐다. 투자자들은 이제 회사채나 은행채를 사는 것도 극도로 몸을 사리게 된다. 기업이 자금 마련을 위해 채권을 발행해도 안 팔리는 유찰 사태가 이어지고 채권 금리는 치솟았다.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유동성 공급을 비롯한 대책을 내놓았고, 강원도는 채무를 12월15일까지 갚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금융시장이 얼마나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 존재인지를 잘 보여줬다.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김혁조의 만사소통] 챗GPT에 대한 단상
“교수님, 이제 학생들 리포트는 어떻게 채점하죠?” “뭐, 그냥 선풍기에 날려볼까요? 멀리 날아가는 것은 D, 가까이 떨어진 것은 A. 이렇게요.” 두 교수님들의 넋두리다. 다름 아닌 ‘챗GPT(지피티)’ 때문이다. 이걸로 그럴싸한 리포트도 만들고, 심지어 논문도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용을 판단하기 힘드니까 페이지수가 많은 리포트에 점수를 많이 주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한 것이다. 대학에서는 학점을 어떻게 주고, 논문 심사는 어떤 기준에서 해야 할지 어려움에 곧 봉착할 것 같다. 챗GPT는 ‘대화형 인공지능(AI)서비스’다. 쉽게 말해 검색창에 대화하듯이 뭐든 물어보면 답을 찾아준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학생들이 챗GPT를 이용해 리포트를 쓰고, 심지어 미국 일부 대학에선 챗GPT가 로스쿨 과정을 통과했다고 한다. 또 엑셀 프로그램 작업 등 5시간이나 걸리는 문서 작업을 단 1분 만에 끝낸다니 업무 활용도에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 할 만하다. 이뿐만 아니라 시나 소설도 수준급으로 쓴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챗GPT의 등장으로 기존 검색엔진들은 난리가 났다. 구글은 챗GPT에 맞서기 위해 ‘바드(Bard)’를 내놓고 시연행사를 가졌지만 망신을 당했다. 챗GPT의 성공에 당황해서 서둘러 공개했다가 오답을 양산하는 결과를 낸 것이다. 네이버도 대기업과 정부의 손을 잡고 거대 AI 육성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대화형 인공지능 검색서비스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젠 검색창이 인간의 귀처럼 작동해서, 뭐든 말하면 척척 찾아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과연 챗GPT는 자동차·전기·우주선 등과 같이 인류문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삶은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챗GPT가 기존 검색문법을 완전히 바꾸면서 인류에게 새로운 형태의 삶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챗GPT가 복잡하고 힘든 일들을 아무리 빠르게 해결한다 해도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은 따라 오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챗GPT에 시를 한수 부탁해봤다. 제목은 ‘마당’. 한마디로 놀라웠다. 근사했다. 마당 속의 나무와 꽃들에 어릴 적 추억을 넣었다. 그럴싸해 보이는데 왠지 개운하지 않다. 그 이유는 너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만의 추억과 이야기들은 빠져 있다. 나만의 특별한 느낌이 없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여백과 여운이 없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린 늘 얼굴을 맞대고 소통했다. 말을 하고, 눈빛을 보내고, 표정을 읽으며, 제스처를 하면서 소통했다.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을 읽으며 몸과 마음으로 소통했다. 글은 또 어떤가? 글씨체에서 글쓴이의 외모를 상상하고, 필압, 다시 말해 꾹꾹 눌러 썼는지, 살살 썼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짐작하기도 했다. 편지지에 눈물 한방울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감정이 복받치기도 한다. 그래서 부대에 배달된 엄마의 편지를 가슴속에 늘 지니고 다녔고, 헤어지자며 눈물자국이 묻어 있는 연인의 편지는 세상을 무너지게 만들기도 했다. 소통수단이 말과 글만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안다. 말과 말 사이의 여운, 글과 글 사이의 여백에서 나오는 느낌과 분위기를 통해 소통했다. 그런데 챗GPT는 어떤가? 이 모든 것을 생략해 버린다. 이게 진정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을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챗GPT를 띄워놓고 멍하니 보고만 있다. 김혁조 강원대 교수
[이근후의 팔팔구구] 인생은 황홀한 기쁨이다
삶을 살아보면 기쁜 일이 더 많을까 아니면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 더 많을까. 부처는 인생은 생로병사의 고(苦)라고 했으니 기쁨보다 고통이 더 클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뛰어넘어 어떤 이는 ‘인생은 황홀한 기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한번 즐거움과 고통을 견줘봐야겠다. 즐거움이나 우울함은 감정에 해당한다. 감정은 ‘어떤 일이나 현상·사물에 대해 느끼는 심정이나 기분, 정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감정’을 뜻한다. 그러니 여러가지 감정을 묶으면 정서가 된다. 정서에는 기분 좋은 정서도 있고, 우울한 정서도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과 우울의 감정은 많지만 개인 수준에 따라 견딜 만큼만 해결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 범주 외에 병리적인 정서도 있다. 우선 병적으로 분류되는 정서다. 병적 정서라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 정서를 말한다. 기분 좋을 일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거나 우울할 일도 아닌데 우울해진다는 게 바로 병적 증상의 대표적인 예다. 기분 좋은 정서에는 다행감(경조증·euphoria)·의기양양감(elation)·고양감(exaltation) 그리고 극치에 이르면 나타나는 황홀감(ecstasy)이 있다. 우울감은 비탄(grief)과 우울로 구분하는 정도다. 병적이 아닌 황홀감을 찾아본다. 그리스의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 일화가 생각난다. 왕에게 왕관에 금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라는 명을 받은 아르키메데스는 문제를 풀기 위해 노심초사했으나 풀지 못했다. 그는 어느 날 목욕하러 갔다가 탕 속에 들어가면서 문제해결 방법을 찾게 됐다. 탕에 잠긴 자기 몸 부피만큼 물이 넘치는 원리를 발견하고서 너무 기쁜 나머지 벌거벗은 채 탕에서 뛰어나와 펄쩍펄쩍 춤을 췄다고 한다. 이런 깨달음은 병적인 황홀감이 아니라 간절하게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를 아주 우연한 기회에 풀게 됐다는 생각에 의해 황홀 상태에 이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싯다르타 이야기이다. 그는 6년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순간 그 깨달음의 환희를 주체하지 못해 일주일 동안 부다가야를 껑충껑충 뛰었다고 한다. 이 또한 황홀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두 사람 모두 그토록 찾고자 했던 진리를 깨달았으니 그 기쁨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을 테다. 남들 보기에는 이상한 행동이지만 이유 없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니 병적인 황홀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깨달음을 통한 기쁨의 황홀감인 셈이다. 황홀감을 예술로 승화한 이야기도 있다. 쇼팽은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얻은 모든 환상적인 느낌을 곡으로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바로 ‘환상 교향곡’이다. 이런 황홀감의 극치는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즐거움이나 기쁨은 많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소소한 기쁨보다는 황홀감에 가까운 즐거움의 극치를 경험해보고 싶어 한다. 그것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쉽지 않은 황홀감을 맛보고자 가짜 황홀감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여기서 가짜 황홀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땀 흘리는 노력 없이 순간적인 쾌락의 황홀감을 연속적으로 맛보기 위해 조작하는 황홀감을 말한다. 조작한 황홀감으로는 약물에 의한 황홀감이 대표적이다. 이런 황홀감은 약효가 떨어지면 금방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황홀감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더 자주, 많이 약물을 취하게 된다. 이는 황홀감이 아니라 약물중독에 따른 부작용일 뿐이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시인의 詩 읽기] “작으나 큰 땅, 텃밭”
이문재 시인
텃밭 농사, 주말농장, 도시농부, 마을만들기…한때 자주 입에 올리던 낱말이다. 북한산 기슭에 살 때는 공터에 상추며 고추·가지를 심었다. 서울 서쪽 신도시로 이사하고서는 주말농장을 찾기도 했다. 둘 다 실패했다. 장마철에 김매기를 놓치자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도시와 농사를 연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시들지 않았다. 한때는 “도시에 논밭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내 눈에 도시 곳곳이 ‘땅 천지’로 보일 때였다. 아파트 화단, 주차장, 지붕과 옥상, 운동장, 공원, 도로 등등. 도시에서 하늘이 보이는 곳은 대부분 땅이 될 수 있다. 자동차를 줄이고 대중교통을 늘리면 도로를 논밭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연도 하고 글도 썼지만 반응이 없었다. 20여년 저쪽의 일이다. 유현미의 ‘씨앗 넣는 날’은 작가가 최근 펴낸 그림책 <아그작 아그작 쪽 쪽 쪽 츠빗 츠빗 츠빗>에 실려 있다. 봄부터 겨울까지 한해 텃밭 농사를 시와 그림으로 엮어냈다. 동시처럼 술술 읽히지만 그 안에는 생태적 감수성이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10년 뒤 우리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20년 뒤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지금 인류가 마주한 최대 난제는 기후위기다. 지구가 뜨거워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분야는 두말할 것도 없이 농업이다. 가뭄·폭우·폭염·한파가 이어지면 우리는 대체 어디서 식량을 구할 것인가. 텃밭 농사와 도시농부가 여러 해결책 중 하나다. 땅과 흙 속에서 천지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시론] 산지 소값과 소비자가격 연동 강화 방안
이준원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최근 소값 하락으로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2월 한우 도매가격은 1㎏당 1만6000원 수준으로 2021년 9월(2만2600원)보다 28% 하락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가격은 16% 내리는 데 그쳤다. 도매가격 하락에 비해 소비자가격은 12%포인트 적게 떨어진 것이다. 혹자는 도매가격이 급락했는데 소비자가격 하락은 미미해 소비가 정체되고 산지 소값이 상승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유통상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니다. 시장경제 원칙에 맞는 연동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에서 축산물 가격을 담당했던 1980년대에는 ‘육류 연동가격제’가 있었다. 이는 산지나 도매시장 경락가격이 10일 동안 3% 이상 변동할 때 시·도가 쇠고기와 돼지고기 소비자가격을 고시하는 제도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산지와 도매시장의 가격 변화를 제때 반영하지 못했다. 고시된 가격이 잘 지켜지지 않았고 소비의 다양화·고급화 추세에도 역행했다. 결국 연동가격제는 1991년 폐지됐다. 연동가격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야 한다. 가격 상승기인 지난 8년간(2014∼2021년) 한우 도매가격은 65% 상승했는데 소비자가격은 70% 상승했다. 소비자가격 상승률은 도매가격 상승률보다 5%포인트 더 높았다. 이렇게 유통과정에서 소비자가격이 더 높아진 것은 원료육 가격 상승에 더해 임대료, 인건비, 소매상 이윤 등이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조사한 쇠고기 유통마진(2021년)은 소비자가격의 48%에 달했다. 즉 소비자가 5만원어치의 쇠고기를 구입할 때, 한우농가에 돌아가는 소득은 2만6000원(52%)에 불과하고 중간 유통마진이 2만4000원(48%)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산지와 소비자가격을 잘 연동시키려면 유통마진의 핵심 비용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쇠고기 가격을 높이는 3개 요인 중 임대료는 최근 안정적이었다. 상가 임대료는 2022년 기준 지난 10년간 3% 정도 하락했다. 반면 또 다른 핵심 요인인 인건비(최저임금)는 같은 기간 100% 올랐다. 결국 산지와 도매가격의 변동이 없더라도 높은 인건비 상승 때문에 소비자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산지와 소비자가격 연동을 강화하려면 인건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최근 무인카페 등 무인점포 창업이 크게 늘고 있는데 농협이 2017년 시도했던 육류 자동판매기 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특히 유통상인의 과도한 이윤을 줄이려면 유통단계를 축소하고 유통경로간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최근 농산물 유통도 온라인 거래가 대세가 돼 온라인 쇼핑액은 2022년 7조8900억원에 달했다. 지난 5년간 3.5배 늘어난 수치다. 이제 육류도 온라인 쇼핑이 정착되도록 유통과정에서 신선도 유지나 브랜드화에 역점을 둬야 한다. 또한 경쟁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소비자들이 가격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축산물 거래가 소위 완전경쟁시장이 될 때 유통상인의 높은 이윤은 축소되고, 산지와 소비자가격의 연동이 강화될 수 있다. 소비자의 이해도 중요하다. 한국의 쇠고기 유통마진은 미국(63%)보다 적고, 일본(47%)과 비슷하다. 최근 고급 쇠고기를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품질 고급화 비용이 추가돼 유통마진은 더 커졌다. 산지와 소비자가격의 연동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파동을 계기로 이벤트성 행사보다 근본적인 처방에 집중하기를 기대해본다. 이준원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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