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이동기 ‘논개’, 몸 바쳐서 몸 바쳐서…그 절개 잊을 수 없어라

입력 : 202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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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홍기

역사는 한세대가 공유하는 횡적 문화의 순간을 종적인 시간 축 위에 쌓아가는 궤적이다. 이 순간순간은 때때로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되고, 가락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감성으로 남는다. 1982년 이건우의 노랫말에 이동기가 멜로디를 넣은 노래 ‘논개’가 바로 이런 유의 대표곡이다. 임진왜란 중 조선군이 참패한 제2차 진주성 전투와 관련한 서사를 담았다.



꽃잎 술 입에 물고 바람으로 달려가

작은 손 고이 접어 기도하며 울었네

샛별처럼 반짝이던 아름다운 눈동자

눈에 선한 아름다움 잊을 수가 아 없어라

몸 바쳐서 몸 바쳐서 떠내려간

그 푸른 물결 위에

몸 바쳐서 몸 바쳐서 빌었던

그 사랑 그 사랑 영원하리

큰 별이 저리 높은 아리따운 논개여

뜨거운 그 입술에 넘쳐가던 절개여

샛별처럼 반짝이던 아름다운 눈동자

눈에 선한 아름다움 잊을 수가 아 없어라

(이동기 ‘논개’ 가사 일부)




1592년 10월 왜군은 호남 곡창지대로 통하는 진주성을 공격하다가 진주목사 김시민에게 대패를 당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왜군은 1593년 6월 10만여명의 병력과 800여척의 선박을 동원해 경남 함안·반성·의령을 거쳐 진주성을 공격해왔다. 마침내는 철갑을 입고 사륜거·장갑차·철추(鐵鎚)로 성문을 뚫기에 이르렀으며 노도와 같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최후까지 혈투하던 김천일 장군이 아들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고, 경상우병사 최경회 장군도 남강에 투신해 순국했다.

진주성을 함락한 왜군은 촉석루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이때 주씨 성을 가진 1574년 전라도 장수현 출생의 여인이 나섰다. 부친이 사망한 후 장수현감 최경회에게 의탁하다가 정실부인이 사망한 후 그의 처가 됐던 여인, 바로 논개다.

논개는 승리감에 도취돼 있던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남강변 ‘의암(義巖·논개바위)’으로 유인해 그를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그를 익사시켰다. 논개가 투신한 바위는 원래 위험하다는 뜻의 ‘위암(危巖)’으로 불렸으나 이후 ‘의로운’ 바위로 명명됐다.

‘논개’를 열창한 이동기는 1954년 충북 음성 출생으로 1979년 데뷔했으며, 1982년 ‘논개’로 스타덤에 올랐다. 2003년 ‘분홍립스틱’으로 데뷔한 가수 이정민이 그의 딸이다.

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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