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한명숙 ‘노란 샤쓰의 사나이’, 1960년대 인기 많던 말없는 그 사람

입력 : 202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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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홍기

유행가 뒤에 ‘유행’이 매달리면 가수는 인기에 날개를 단다. 우리 대중가요 100년사에 매달린 유행의 색깔은 많지만, 1961년 허기지고 거칠던 거리에 팔락거리던 ‘노오란’ 색깔은 단연 도드라졌다.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이 쏠려

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

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한명숙 ‘노란 샤쓰의 사나이’ 가사 전문)




노란색이 아니라 ‘노오란색’. 노랫말 중의 이런 ‘오’ 자를 장식음이라고 한다. 이 노래는 팝 스타일, 엔카풍 트로트 물결이 넘실거리던 그 시절,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물길을 트고 유행의 다리를 건설한 곡이었다.

노랫말의 여성 화자는 노오란 샤쓰를 입은 사나이의 겉모습에 반하지만 차츰 내면에 동요가 인다. 노랫말처럼 멜로디와 리듬도 변해간다. 멜로디는 2분의 2박자 스윙 리듬, 선율은 미국의 컨트리송과 힐빌리를 본떴다.

이 노래는 영화로도 흥행했다. 1962년 엄심호 감독, 신영균·엄앵란 주연의 영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늘 노란 셔츠를 입고 다닌다. 그러면서 뭇 여성들 사이 인기를 누리다 결국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한다. 1962년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후 무려 10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때 가수 한명숙이 영화배우로 거듭났다.

이후엔 프랑스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가 방한했을 때 서울시민회관에서 이 노래를 우리말로 불러 인기를 모았다. 또 이 노래는 동남아시아와 일본 가요계에서도 유행했다. 1970년대 이성애가 일본에서 리바이벌해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한명숙은 1935년 북한 진남포에서 출생해 용강에서 성장했다. 16세에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중 인천으로 피란 후 인천의 태양악극단에서 활동했다. 한명숙이 활동했던 미8군 무대는 그 시절 대중가수 등용문이었다.

한명숙의 남편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육군 상사였다. 둘 사이의 큰아들이 이명훈의 ‘내 사랑 영아’를 작곡한 이일권이다. 이일권은 드러머 겸 작곡가다.

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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