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잘 살아 있습니까

입력 : 2022-05-27 00:00

행복하려고 살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행복할 때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 이 질문은 ‘파도는 밀려오는 것인가, 아니면 밀려가는 것인가’라고 따지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살아 있음’의 감각을 우리는 모른 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죽이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할 때가 자주 있다.

그럴 때 문정희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 눈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무릎을 철썩 소리라도 나게끔 때려야겠다 싶어진다. 파도처럼 수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 삶이라면 그 삶의 지느러미로 우리는, 어떤 의미 하나를 새길 수 있을 것인가. 망망대해에 살고, 밀림 속에 살고, 용광로 속에 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쓰리고 버겁고 그렇기만 한 일 같은데.

신은 우리에게 잘 살아 있느냐고 안부를 물을 때마다 카드 한장을 내민다. 이 카드 한장을 잘 쓰는 사람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잡게 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카드 한장이 자신에게 주어졌는지조차 모른다.

그 카드를 잘 쓴다면 우리가 가고 싶었던 바닷가로 흘러가게 될 것이고 그토록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희망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카드를 쓰지 못하는 이라면, 행복하지 못하다고 지질하게 한숨이나 쉬면서 세상에 매달릴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자주 느껴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이치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오직 한 사람, 바로 당신을 향해 있다”는 월트 휘트먼 시인의 말이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해준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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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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