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나도 당신과 섬에 가고 싶었다

입력 : 2021-05-07 00:00




무슨 일일까. 악기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일이긴,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은 봄날의 하늘빛 때문이다. 아니다. 사랑이 있어서다. 시인 가슴 한가운데 맺혀 있는 못 깨우친 사랑이.

슴슴하게라도 사랑해야 할 것 같다. 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면 그만일 사랑을. 당신을 사랑해서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고 마는 깨우친 사랑이어도 이 봄엔 어울릴 것만 같다. 사랑에 필사적이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처음은 우연이어야 한다.

갈 수 없는 곳에 갈 수 있고,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 수 없으며, 그럼에도 시종 가슴이 악기처럼 울렁거리는 일, 그것은 사랑이다. 그 길에 흐드러지게 꽃이 열리고, 귓가에 큰물이 굽이쳐 페달을 굴리고, 모든 시야에 걸려드는 사소함들을 환각하는 일,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하지 못하는 당신이 사랑하지 못하고 있을 때도, 세상은 사랑의 풍경을 보여주며 페이지를 넘긴다. 우리는 그 페이지를 따라 여행해야 하고, 그 길에서 당신 자신을 다 지워낼 수 있을 때 이번 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나도 당신과 섬에 가고 싶었다. 당신과 나란히 맞댄 무릎들 위로 한가득 들이치는 햇살, 그리고 창문 너머 파도소리를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든 당신과 나를 그려보았다.

그 섬에 혹독하게 갇히게 된다면 당신하고 갇히고 싶은 것이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밤낮없이 글을 쓰거나 아니면 당신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내 이번 생의 힘줄을 잡고 싶은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나 잠시 당신의 악기가 되도록 나를 내던져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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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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