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의학이야기] 유기농과 기생충

입력 : 202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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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기생충 감염 높인다?

조사 결과…감염률 0%에 수렴 입증된 바 없는 허구 주장일 뿐

불안한 마음 버리고 즐겁게 먹자

 

모 지방에 사는 44세 남성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B형간염을 앓았으며, 그 이후 간염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이외에는 다른 이상은 없었고 검사 소견도 대체로 정상이었다.

그런데 대장내시경에서 뭔가가 나왔다. 환자의 나이로 보아 폴립 정도가 고작이려니 생각했지만, 내시경에서 관찰된 것은 놀랍게도 기생충이었다. ‘왜소조충’이라는 이름의 기생충이 수도 없이, 대장 전체에 퍼져 있었다. 왜소조충은 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기생충이다. 크기는 그 이름처럼 작아, 폭 1㎜에 길이가 2∼4㎝다. 크기가 작아서인지 사람에게 별다른 증상을 유발하진 않지만, 수백마리의 왜소조충이 대장 전체에 퍼져 있는 건 좀 이례적이긴 하다.

왜소조충은 쥐의 변에 오염된 채소를 통해 감염된다. 왜소조충에 감염된 쥐가 채소 근처에서 변을 보면 거기서 나온 알이 채소에 묻고, 그 채소를 먹어서 감염된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일은 아주 드물어서 실제로 왜소조충에 감염된 환자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렇다면 이 남성은 어떻게 왜소조충에 감염됐을까? 한가지 힌트는 이 남성이 오래전부터 유기농만을 고집했다는 점, 그래서 이 증례를 보고한 연구자들은 이렇게 추측했다. “그가 먹은 유기농 채소가 원인일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일본에 사는 87세 남성이 심한 빈혈로 병원에 왔다. 빈혈은 적혈구가 모자라는 병이고, 적혈구는 우리 몸 곳곳에 산소를 운반해주는 도구다. 그런데 빈혈이 생기면 우리 몸에 산소가 모자라게 되고, 위기의식을 느낀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자주 뜀으로써 그 결핍을 보충하려고 한다. 하지만 빈혈이 계속되면 심장도 결국 포기를 한다. “아, 난 할 만큼 했어. 더이상은 무리야. 나 이제 쉴 거야!”

이렇게 심장이 퍼져버리는 게 바로 심부전이다. 실제로 이 환자는 심부전으로 생명이 경각에 놓인 상태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빈혈의 원인을 찾고 이를 교정해주는 것, 그런데 검사 결과 대변에 피가 섞여 있는 것 아닌가? 아마도 소화기관 어디에선가 출혈이 있고, 그중 일부가 변에 섞여 나온 것이리라. 출혈 부위를 찾기 위한 위내시경이 시행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환자의 십이지장에서 ‘구충’이라 불리는 기생충들이 잔뜩 나왔다. 구충은 원래 그보다 아래 부위에 사는데, 십이지장까지 올라온 걸 보면 적어도 수백마리의 구충이 환자의 몸 안에 있다는 얘기였다. 구충은 사람 몸속에서 피를 빨아먹는다. 하루 0.1㎖ 정도에 불과하니 그리 많은 건 아니겠지만, 500마리쯤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루 50㎖씩 기생충한테 피를 빨리니, 빈혈이 안 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구충은 사람의 발바닥을 뚫고 감염되는 기생충. 신발을 안 신던 시절이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구충이 어디 있다고 저렇게 많은 구충에 감염된 것일까? 의사들은 환자에게 이것저것 캐물었고, 결국 원하던 답을 얻었다. 이 환자 역시 20년 이상 유기농 음식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의 결과만 본다면 유기농을 먹으면 기생충에 더 잘 감염될 것 같다. 실제로 인터넷을 보면 이 둘의 관계를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화학비료 대신 돼지 똥 같은 가축 분뇨를 쓰는 유기농 채소는 기생충 감염률을 높입니다.” 과연 이 말은 맞는 것일까?

유기농이 기생충 감염을 증가시킨다면, 기생충 감염률이 유의미하게 증가해야 맞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국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2012년,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은 2.6%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간디스토마를 비롯해 물고기를 날로 먹어서 감염되는 ‘디스토마’가 대부분이었고, 유기농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회충과 편충의 감염률은 0%에 수렴한다.

그렇다면 위에 소개한 두 사례는 무엇일까?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기생충 감염자가 있을 때 유기농은 연구자들이 습관적으로 갖다 붙이는 핑계라고. 게다가 기생충은 대부분 별다른 해가 없으며, 치료도 잘되는지라 걸린 다음에 걱정해도 늦지 않다. 87세 일본 남성이 증상이 생겼을 때 한번이라도 병원에 갔다면 구충제 한알로 금방 치료됐을 것이다. ‘유기농=기생충’은 아직 입증된 바 없는, 허구의 주장이다.

그러니 그냥 즐겁게 먹자. 기생충에 감염될지도 모른다며 불안한 마음으로 먹는다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건강에 해로울 수 있으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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