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칼럼] 농업의 자기화

입력 : 202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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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정책적 통제 대상 되기 쉬워

코로나19 위기에도 중심 잡아야

 

농업처럼 중요한 산업은 없다. 농업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영광스러운 산업이다. 그러나 상처 없는 영광은 없다. 농업의 영광스러운 얼굴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농업이 생산하는 식량은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기에 농업은 항상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사람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일을 우선시해야 했다. 다른 산업이 자신의 이익을 향해 달려가는 자유를 누릴 때 농업은 정책적으로 통제를 받고 때로는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됐다.

약 2000년 전 중국 한나라 때 쓰인 <염철론(鹽鐵論)>에는 다음과 같이 유학자들과 재상 상홍양이 황제 앞에서 논쟁한 내용이 담겨 있다. 유학자들은 “상공업이 발전하면 백성들은 사치를 좋아하게 되지만, 농업이 발전하면 소박하고 진실하게 됩니다. 백성들이 소박하고 진실하면 재산이 풍족해지고 백성들이 사치스러우면 기근이 발생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상홍양은 “백성이 궁핍하고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것은 물자의 유통이 막혀 천하의 재화가 분산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것(상공업을 장려하는 균수·편중법)을 폐지한다면 앞으로 무슨 비용으로 변방의 병사들을 먹이고 돌보겠습니까. 또 내지의 백성들이 편하게 잠들 수 있는 것은 변방의 고을로 장벽을 삼고 있기 때문인데, 변방에 기근이 발생했을 때 무엇으로 백성들을 구제하겠습니까”라고 역설했다. 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유학을 장려하고 농업을 근본으로 삼는 개혁을 시행함으로써 농업을 중시하는 중국 통치사상의 기틀을 만들었다.

19세기초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리카도와 토머스 맬서스의 논쟁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곡물의 수입을 금지하는 곡물법(Corn Law)을 유지하고 있었다. 리카도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촉진하는 것이 영국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산업구조를 농업에서 제조업 위주로 전환하려면 곡물법을 철폐해 값싼 농산물이 자유롭게 수입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맬서스는 영국의 곡물 생산을 보호하고자 곡물 수입을 제한할 것을 주장했다. 수입이 제한되면 영국 내 곡물 가격이 상승해 국내 곡물 생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이를 통해 곡물 생산도 증가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리카도가 죽은 지 20여년 뒤 아일랜드 대기근(1845년)을 계기로 곡물법을 철폐함으로써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했다.

근대화 이후 개인의 창의력을 기반으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제조업의 비중이 커지자 농업도 정책적 통제와 정치적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점차 자신이 경작할 작물을 선택할 수 있게 됐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의 종류와 양도 늘어났다.

그러나 자유를 누리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자기 자신을 돌보면서 세상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것은 혼란스러운 일이다.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확보하고 역량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기 자신과 세상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 급변하는 정보혁명의 물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어려움 속에서 농업은 정책이나 정치의 그림자로 행세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어려울수록 마음의 중심을 잡고 밝은 세상 속의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다시 통제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융 심리학>에서는 세상 속에서 진실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을 ‘자기화(Individuation)’라고 한다. 이번 추석에 우리 농업이 마음 한가위(한가운데)에 균형을 잡고 진정한 자기화의 길을 가기를 기원한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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