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일 칼럼] 닫힌 농촌에서 ‘열린 농촌’으로

입력 : 2020-09-07 00:00

삶의 질 향상 위한 인프라 구축 필요

민관 ‘기초생활권 조성사업’ 주목


2015년 이후 우리나라 귀농·귀촌 인구는 매년 전체 인구의 1% 수준에 이르고 있다. 산업화 이래 이촌향도 시대를 지나 농촌지역으로 인구 순유입이 지속되는 이도향촌(離都向村)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이제 귀농·귀촌은 당사자 개인의 이주나 마을 구성원의 다양화를 넘어 농촌의 변화와 혁신을 촉발하는 추동력으로 자리 잡아야 할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적 흐름을 볼 때도 저성장 시대를 맞아 분산되거나 밀집도가 낮은 농촌 등 저밀도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활동은 한층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농기술 측면에선 정보기술(IT)과 농업의 융합을 통한 첨단기술 발전으로 인해 감(感)과 경험을 토대로 한 관행농업에서 빅데이터·인공지능(AI)에 의존하는 스마트농업으로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여건 아래 도시와 농촌은 밀접하게 연계되는 관계로 바뀌고, 농촌사회는 단조로운 농경 위주의 ‘닫힌 농촌’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성을 지닌 ‘열린 농촌’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활발한 귀농·귀촌 흐름이 농촌사회의 변화와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적어도 몇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먼저 정책의 목적이 소득이나 영농주체 확보와 같은 좁은 시각을 넘어 농촌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라는 폭넓은 목표로 설정돼야 한다. 귀농·귀촌의 경우 전체의 96% 이상이 귀촌이며, 귀농은 불과 4%에 그친다.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주요 정책 대상을 귀농인에 국한하기보다 귀촌인 전체로 확대해 정착을 유도하고, 그중 조건을 갖춰가는 영농희망자를 추가로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귀농을 귀촌의 일환으로 볼 때 정책 주체는 농정당국과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국토 균형발전에 관련된 여러 부처가 돼야 하고, 이들의 폭넓은 참여와 역할 분담을 통해 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귀농·귀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도시지역과 여러 민간부문에까지 확산해 각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춘 주체들이 함께 참여할 때 지속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귀촌정책의 대상 범위는 종래의 1개 농촌마을 또는 소수 마을을 묶은 권역 단위를 넘어 필수적인 생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초생활권 단위로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거주자의 삶의 질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지역에서는 기초생활권 단위를 적어도 면지역 또는 2∼3개 면을 포괄하는 영역으로 설정해야 실질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대상지역의 공간을 계획할 때는 각종 생활서비스의 전달체계 효율화를 위한 ‘압축도시’ 개념을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존 귀농·귀촌 성공사례는 대부분 소득 증진, 농촌체험관광, 문화예술활동, 지역복지사업, 청년 영농교육 등 특정 영역의 개별적 활동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기초생활권을 단위로 삼고 귀촌인의 정착을 유도하려면 귀촌활동 영역과 관련해 일자리·소득, 주거, 교육, 의료, 문화 등 제반 생활여건 조성을 패키지로 한 포괄적 접근을 추진해야 한다.

최근 경북 의성군 안계면을 거점으로 서부권역 7개면을 묶는 ‘이웃사촌 청년 시범마을 조성사업’이나 경남 함양군 서하면 일원을 대상으로 한 ‘농촌 유토피아사업’ 등 민관이 협력해 기초생활권을 조성하는 패키지사업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농촌지역 혁신모델이 보다 많은 곳에서 시도되길 기대해본다.

정영일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대표·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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