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일 칼럼] 삶의 질 추구 시대, 도농상생이 해법

입력 : 2020-06-29 00:00

중앙정부 주도 획일적 사업 아닌

지역 특성 반영한 모델 실험해야
 


우리 농업·농촌은 주곡자급화·소득증진 시대를 넘어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1960~1970년대 증산을 통한 주곡자급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시대에서 1980~1990년대 개방화에 따른 도농간 소득격차 완화를 중시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후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적 관심은 증산·소득 같은 단일 목표에서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정부가 2004년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통합시책을 추진하는 것 또한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삶의 질 향상이 최고의 가치로 떠오른 이유는 우리 국민의 삶의 질 수준이 경제성장에 걸맞게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삶의 질 지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38개국 중 29위다. 영역별로도 일과 삶의 균형은 35위, 환경은 36위, 공동체는 3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한국사회가 중소득국으로 발전했지만, 소득증진이 국민행복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스털린의 역설’에 빠진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촌향도와 젊은 인구 유출이 가속하면서 농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반면에 도시에선 과도한 인구 집중으로 높은 주거비용과 교통혼잡 등 삶의 질 저하문제가 나타났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경기침체, 일자리 감소, 높은 생활비용 등 도시부문의 압출요인과 쾌적한 환경, 대안적 삶 등 농촌부문의 흡입요인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귀농·귀촌 인구가 꾸준히 증가했다. 농촌인구의 순유입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귀농·귀촌의 동기는 영농 목적 외에도 건강, 전원생활, 공동체나 생태적 가치 추구 등 매우 광범위하다.

주목할 점은 귀농·귀촌인의 상당수가 농촌지역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창조적 계층이란 사실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농업기술 지원, 교육·역량 강화, 마을 개발, 지역문화예술·농촌관광·공공부문 지원 등 지역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농촌은 도시로부터 다양한 역량을 갖춘 인력을 공급받고, 귀농·귀촌인은 도시에서 발휘하기 어려웠던 잠재력을 농촌에서 실현함으로써 도농상생의 시너지효과를 거두는 선순환 고리가 생긴 것이다.

여기서 긴요한 전제는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농촌’을 만들기 위한 관련 주체들의 사회적 인식·제도 개선이다. 농촌의 삶의 질 향상 노력이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려면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접근이 아니라 각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다양한 실험과 모델이 동시에 병행적으로 시도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민간과 공공부문의 다양한 주체가 활력 넘치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추진 중인 ‘농촌 유토피아’사업이 눈길을 끈다. 경남도와 함양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농경연, 서하초등학교 등이 교육·주거·문화·돌봄·일자리를 패키지화한 중장기 계획에 참여하는 이 사업은 도농상생을 통한 농촌 활력증진의 새로운 모델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이같은 흐름이 더욱 확산하길 기대한다. 농어촌지역의 삶의 질을 높여 도농간 불균형을 개선해야 하는 시대적 과업 앞에서 도농상생을 통한 선순환 구조 창출은 필수적인 핵심전략이기 때문이다.

정영일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대표·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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