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칼럼] 전염병 피해 최소화하려면

입력 : 2020-03-13 00:00

농업에 대한 국민 인식변화 파악해 스마트농업·온라인 거래로 대응을
 


전염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14세기 중반 대기근에 시달리던 유럽에 흑사병이 발생하자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고, 이로 인해 농산물이 남아돌게 됐다. 농산물 공급과잉과 흑사병 창궐은 식품첨가제와 약재로 사용되는 향신료의 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15세기초 포르투갈 왕자 엔히크는 향신료를 구할 수 있는 바닷길을 트기로 작정하고 대양으로 진출해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이 남미대륙에 전파한 천연두·홍역·티푸스 등의 전염병은 남미의 원주민 인구를 10분의 1로 감소시켰다.

20세기 이후 항생제가 발달하면서 세균성 전염병은 퇴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특효약을 만들기 어려운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교통의 발달과 인구의 밀집에 편승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1918년 발생해 전세계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의 후유증은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보건경제학자 더글러스 아몬드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임신했던 미국 여성의 자손들에게선 태아기의 영양부족으로 학업부진·신체장애·소득저하 등이 나타났다고 한다. 1981년 발견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은 지금도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지역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다. 21세기에 접어들고 나서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신종플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끊임없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동식물 전염병도 예외는 아니다. 1845년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감자잎마름병은 감자에 의존하던 아일랜드 경제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800만명이었던 인구를 절반으로 감소시켰다. 1863년 미국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필록세라 해충은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시켜 전세계 주류산업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1900년대초부터 바나나에 번지기 시작한 파나마병은 중앙아메리카의 정치·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전세계의 바나나 품종을 <그로미셸>에서 <캐번디시>로 대체시켰다.

19세기부터 꾸준히 축산농가를 괴롭혀온 구제역은 1997년 대만을 하루아침에 돼지고기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시켰다. 2010년 한국에서도 구제역이 발병하면서 300만마리가 넘는 돼지가 살처분되고 수조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호시탐탐 우리 축산업을 노리고 있다.

빈발하는 전염병은 농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변화시킨다. 이로 인해 현대사회 특징인 농산물의 고밀도 생산과 집단소비는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생산과정에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스마트농업이 환영받고, 공급자와 수요자간 접촉이 필요 없는 온라인 농산물 거래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농산물 생산·가공·유통 과정의 정보는 한층 투명하게 공개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식품 전달체계 전반에 더욱 엄격한 위생기준과 안전성 점검이 요구될 것이다.

지금 온 국민이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농민들도 농산물 소비감소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생명과 식품을 다루는 산업인 농업 종사자들은 전염병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기 쉽다. 전염병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농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 변화를 재빨리 파악하고 적응해야 한다. 전염병에 농업을 휘두를 기회를 줘선 안된다. 전염병이 악영향을 미치기 전에 우리 농업이 한발 먼저 변화해야 한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