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칼럼] 레몬나무

입력 : 2019-12-18 00:00 수정 : 2019-12-18 23:43

공익형 직불제 정보 성실공개 필요 국민 신뢰 바탕으로 활성화 이끌어야
 


어렸을 때 들었던 팝송 중에 피터 폴 앤 마리가 부른 ‘레몬 트리(Lemon Tree)’란 곡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훈을 주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는데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레몬 나무가 예쁘고 꽃향기가 달콤하지만 그 열매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랑도 이와 같을 수 있으니 함부로 사랑을 믿지 말거라.”

이 가사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경제학에서는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품질이 좋지 않을 상품을 ‘레몬’이라고 이른다. 이러한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은 ‘레몬시장’이라고 한다.

중고차의 성능을 인증하는 믿을 만한 제도가 없었던 과거엔 중고차시장이 레몬시장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컬로프는 중고차시장에서 차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이론화했다.

중고차시장에서 차 주인은 차의 정확한 상태를 알고 있지만, 중고차를 구입하려는 사람은 차의 겉모양만 볼 수 있을 뿐 정확한 주행거리나 고장이력·사고경력 등을 알 수 없다. 이로 인해 차의 진정한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판매자가 이익을 보고 구매자가 손해를 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구매자들이 중고차의 가치를 신뢰하지 못하면 모든 중고차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좋은 품질의 중고차를 판매하는 선량한 판매자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고차시장에서 좋은 품질의 중고차를 판매하려는 사람들이 없어진다. 결국 중고차시장은 외면당하다 사라지게 된다. 즉 거래 당사자 중 한쪽만 거래물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보다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을 때 모든 이들의 거래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농업경제학에서는 채소·과일처럼 겉모양으로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상품을 ‘관찰재’라고 한다. 소비해본 다음에야 그 품질을 알 수 있는 상품은 ‘경험재’다. 소비를 해도 그 품질을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저 믿고 소비할 수밖에 없는 상품을 ‘신뢰재’라고 부른다. 기능성식품처럼 섭취효과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그 예다.

최근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공익형 직불제는 경험재나 신뢰재의 경우와 비슷하다. 국민이 세금으로 지불하는 직불금의 대가로 농민은 공익적 가치를 생산하기로 돼 있다. 그러나 농민이 직불제가 요구하는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은 농민이 얼마나 공익적 가치를 창출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농민이 창출한 공익적 가치를 국민이 알지 못한다면 공익형 직불제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공익형 직불제를 위한 세금을 지불하려 하지 않게 될 것이고 공익형 직불제는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반대로 국민이 농민이 창출한 공익적 가치를 잘 알고 신뢰하게 된다면 공익형 직불제를 위한 세금을 기꺼이 지불하려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충분한 세금이 공익형 직불제를 뒷받침하게 되면 직불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우리 농업·농촌도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공익형 직불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농민이 공익적 가치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정보를 성실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잘 취합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과 농민간의 활발한 정보교류의 통로역할을 함으로써 공익형 직불제가 레몬이 아닌 달콤한 과실이 열리는 나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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