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칼럼] 전환기의 농업정책

입력 : 2019-08-19 00:00

고령농·소농 소득배분 가능성과 공익가치 높이는 ‘직불제’ 지향을
 


정책은 시대적 요구에 반응한다. 우리 국민이 농업·농촌에 요구하는 역할은 우리나라의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다. 그에 맞춰 농업·농촌 정책도 변화해왔다.

식량이 충분하지 못했던 1970년대 이전에는 국민에게 충분한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농업·농촌 정책의 최우선목표였다. 외환보유고가 많지 않아 부족한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도 없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 1970년대말에는 쌀 자급에 성공하게 됐다.

쌀 자급이 이뤄진 다음 중요한 정책과제로 대두된 것은 농가의 소득향상이었다. 1980년대 초반에 농가소득은 비록 도시근로자소득보다 약간 높기는 했지만, 성장세가 점차 둔화하고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이농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산물시장의 개방확대로 인해 우리 농업이 세계 농업과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농업의 경쟁력 향상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농업에 대한 투융자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농업생산구조를 개선하는 정책을 폈지만, 농촌은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었다. 2000년대에는 쌀의 공급초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쌀 수매에 소요되는 예산이 WTO에서 허용한 농업보조총액(AMS)인 1조4900억원을 초과할 우려가 커졌다. 이에 정부는 쌀 수매제를 폐지하고 쌀 공공비축제와 쌀 직불제(변동직불제와 고정직불제로 구성)를 도입했다.

이처럼 그동안 시대적 요구에 따라 확고한 목표를 추구해온 우리 농업정책은 2010년대에 이르러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국민의 농업·농촌에 대한 요구가 변화했을 뿐 아니라 농업·농촌 자체가 다음과 같이 다양하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첫째, 농업과 농촌의 분리현상이 두드러지게 됐다. 현재 농촌가구 중 약 3분의 1만 농사를 짓는 농가다. 농가라고 하더라도 그 수입의 3분의 1만 농업에서 얻고 있다. 농업만으로 농촌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둘째, 농촌을 농산물 생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관광·휴양·체험을 위한 공간, 공익적 가치를 함양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셋째, 판매를 위한 농산물 생산이 역량이 우수한 소수 농가에 집중됐고, 다수의 고령농·소농은 자급자족 수준의 농업을 영위하게 됐다. 통계청의 ‘2015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판매액 3000만원 이상인 14% 농가의 경지면적 비율은 41%에 이른다. 반면 대부분이 고령농인 판매액 500만원 미만인 54% 농가의 경지면적 비율은 21%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들을 고려하면 농업보다 농촌에 좀더 중점을 두는 정책을 펴야 하고, 특히 농촌의 공익적 가치함양 기능을 중요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농가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고령농과 소농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직불제 정책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신중하게 시행된다면 시대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적 요소를 갖고 있다. 농촌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고, 공익적 가치 함양을 장려할 수 있으며, 고령농·소농에게 소득을 배분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직불제 정책의 신중한 운용으로 전환기 우리 농업의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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