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여성이 마음 놓고 귀농할 수 있다면

입력 : 2021-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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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귀농한 시기는 만 24세. 지금도 드물지만, 13년 전 젊은 여성이 아무 연고 없이 귀농하는 사례는 더더욱 흔치 않았다. 주변엔 귀농을 결심했어도 막상 농촌에서 여자 혼자 사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그들은 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주저했을까?

귀농을 마음에 두고 있던 나는 실천에 옮기기 전, 그녀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자 귀농을 꿈꾸는 비혼 여성들과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을 통해 만난 여성들과 농촌에 삶을 꾸려 ‘맛보기 귀농’을 해봤다. 우리는 귀농과 관련된 독서 모임을 만들어 지식을 쌓고 생각을 나눴다. 또 채식 요리법을 배워 만든 요리를 함께 먹어보고, 롤모델이 되는 여성농민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같은 경험을 통해 ‘괜찮겠다’ 싶은 용기를 갖게 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여성들이 귀농을 쉽게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도 알게 됐다. 당시 나는 어디에도 연고가 없었던 탓에 여러 지역으로의 귀농 가능성을 열어두고 뿌리내릴 터를 찾기 위해 수많은 지역에서 수개월 이상씩 머물렀다. 놀랍게도 막바지가 되자 처음에는 몰랐던 경계심이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걸 깨달았다. 농촌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계심이었다. 그간 성차(性差)에 의한 물리적·정신적 폭력이나 차별을 간접적으로 겪었던 탓이다.

‘농촌의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실망하고 떠나는 이들은 결국 여성이었다. 나 역시 여차하면 떠날 준비를 항상 마음 한쪽에 해두고 있었던 듯하다. 여성이 안전하게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농촌이 된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안심하고 그의 의지대로 귀농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상황이 반전된 것은 결혼 후다. 나를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로 안다.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와 달리 이웃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 하지 않으면서도, 훨씬 쉽게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여준다. 기존에 있었던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에 속함으로써 다시 마을에 속하게 되는 구조다.

1인가구가 급격하게 늘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구성되는 추세 속에서 농촌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농촌문화는 과거의 잣대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농촌 인구가 감소한다,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청년들이 들어오고 싶어도 그 날 선 경계를 뚫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청년들에게 결혼에 대한 유·무언의 압박이 도농을 가리진 않지만, 농촌마을의 밀접한 관계 안에서는 더 난처한 경우가 많다. 호의로 접근해도 원치 않는 관심은 오히려 독이 돼 마을을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에 여성농민 전담부서인 농촌여성정책팀이 신설됐다. 농촌여성정책팀에선 여성농민의 역량 강화와 지위 향상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현장에서 여성농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 증설을 체감하고 있다. 때로는 정책이 사회의 변화를 이끈다. 여성농민 정책이 현재에 머물지 않고 더욱 다양한 정체성의 여성농민이 경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농촌 전반에 성평등문화가 지속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여성농민 혼자서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마을에서 존중받는 평등한 공동체문화가 자리 잡을 때 나이를 불문하고 뜻을 가진 여성들이 농촌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농업 공동체 전체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박효정 (농부와 약초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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