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화훼산업의 새로운 길

입력 : 2021-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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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농사를 같이 짓는 시부모님과 이야기하다보면 당신들이 내 나이였을 때 밤새 소나무에 분재 철사를 감으셨던 이야기나, 식물이 처음 어디 농장 누구에 의해 국내에 들어왔는지 등 시쳇말로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한 분야에서 꾸준하게 일을 해왔기에 가능한 이야기들이고,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의 역사에 우리 가족이 있음이 자랑스럽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에 재밌는 경험을 했다. 우리 농장 근처에 수입 관엽식물을 재배하는 농장이 새로 들어섰기에 방문했더니 젊은 남자 사장님과 그분의 어머님이 함께 농장을 안내해주셨다. 그런데 우리 시부모님과 몇마디 나누시더니 이내 수십년 전, 같은 동네에서 농장을 운영했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 서울 외곽에 위치해 있던 화훼농가들이 개발에 밀려 우리 농원이 있는 경기 이천으로 많이 내려왔는데 이분들도 그런 경우였다.

부모님들은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그 당시 논밭이었던 곳을 함께 일궜던 시절로 금세 돌아가 그 개천 건너 누가 살았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다는 등 족히 30년도 더 된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나누셨다. 그리고 이제 막 후계농이 된 나와 아들 사장님에게 서로 돕고 잘 지내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다른 업계도 비슷하겠지만 화훼업의 1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들은 고민이 많은 상황이다. 그분들이 화훼업의 긴 역사를 말할 수 있다는 뜻은 그만큼 시간이 흘러 이제는 이 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한 때가 됐다는 이야기다. 우리같은 경우도 내가 농장을 잇기로 한 뒤로 조금씩 줄여오던 농장 규모를 오히려 더 키우게 됐다. 얼마 전에 만난 또 다른 수입 관엽식물농장도 닫을 생각으로 다 정리했다가 아들의 도전으로 다시 농장을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다행히 근래 몇년간 젊은층을 중심으로 식물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화훼 후계농들은 다른 농업 쪽과는 달리 농사를 짓는다는 ‘슬픈 거부감’이 줄어들게 됐고, 그들만의 젊은 감각으로 농장을 소개하고 브랜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업을 이을 사람이 없어 고민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화훼업은 그 특성상 1년 단위로 농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년 된 나무가 필요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대를 잇지 않는다면 그간의 역사는 사라지고 만다.

희한한 것은 이렇게 화훼업의 명맥이 끊길까 걱정해야 하는 한편에는 일반인을 중심으로 식물을 키우기 위해 비닐하우스까지 임차하고, 해외에서 종자를 수입하거나 정원사 수업까지 듣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까?

물론 전업농으로서 화훼업을 잇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수많은 ‘취미 화훼농업인’들과 공동으로 농장을 운영하거나 일부 임차 형식으로 식물을 배우고, 일을 배우는 장으로 기존의 농장을 이용하는 방법을 제안해본다.

특히 화훼업계에서의 오랜 경험은 그 어떤 분야의 장인과 견줘도 수준에 부족함이 없다. 이들의 노하우를 듣고 이어갈 사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다보면 취미에서 전업으로 이어져 화훼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다만 이런 사업을 개인 농가 차원에서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 화훼농가의 역사를 한 집안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고, 함께 계승하고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화훼농업이 끊기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이다.

이보현 (바이그리너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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