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다양한 품종에 기회가 있다

입력 : 2020-09-16 00:00 수정 : 2020-09-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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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 작기를 마치고 한해 농사가 마무리된 겨울이면 필자는 다른 나라의 시장을 둘러보러 길을 나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되기 직전인 올 1월에도 미국을 다녀왔다. 당시 살펴본 시장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의 레인보우 그로서리, 바이라이트 마켓, 페리플라자 농부시장, 그리고 버클리 유기농 농부시장 등이다.

각 시장에 있는 농산물은 종류도 다르고 매대의 분위기도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작물별로 품종이 다양하고, 상품 규격을 과도하게 따지지 않는 품목이 많았다는 것이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지만 다양한 품종의 개성 강한 형태와 색 그리고 맛과 향에 오감이 행복했다.

“친한 이탈리아인 요리사가 한국에 왔는데 한국은 농산물이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도 한국시장엔 품종이 별로 없어요. 무도 한 종류, 애호박도 한 종류, 당근도 한 종류. 아, 당근은 두 종류네요. 씻은 것과 안 씻은 것….”

요리사들과 이야기해보면 이처럼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가 한국 농산물의 품종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농부로선 결코 웃어넘기지 못할 농담이었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농산물시장을 기업농이 이끌면서 재배 품종이 줄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은 정도가 심하다. 재래시장에서조차 다양한 품종을 못 본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선 특정 품종의 작황에 이상이 생길 경우 식량 수급 불안정 등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쌓아온 식문화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필자는 다품종 재배의 현실적인 상황과 대면해보기 위해 이번에 서로 다른 15개 품종의 토마토를 재배해봤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현실적으로 다양한 품종을 선보이는 건 쉽지 않았다. 다양한 품종을 재배한다는 것은 어린아이를 여럿 키우는 것과 같다. 3300㎡(약 1000평)의 농지에 한 품종을 심는 것과 10개 품종을 심는 것은 아이를 1명 기르는 것과 10명 기르는 것에 견줄 만큼 큰 차이다. 서로 다른 품종끼리 질병의 확산도 심하고, 품종간 생육 차이로 같은 토마토라도 서로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렵게 생산을 해내더라도 대형마트나 도매시장에서 낯선 품종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아 판로 확보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소비자도 그동안 구매해왔던 습관이 있기 때문에 당장은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만약 판매가 잘 안되면 어렵게 농사를 지어놓고도 팔 곳이 없어 헐값에 넘긴 뒤 다음 작기 생산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작기를 생산·판매해본 결과 그것은 기우였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품종의 토마토에 열광했고, 몇배의 값을 흔쾌히 지불했다. 판매자들도 이윤이 남지 않더라도 유통을 해보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토마토의 다양한 맛과 향을 주제로 식탁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다양한 품종을 시장에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로운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다.

점점 더 빠르고 효율적이고 편한 방법만이 살아남는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다양한 품종이 설자리를 만드는 일에 청년농민들이 앞장섰으면 한다. 경쟁력 있는 다양한 품종을 통해 농산물시장에 새로운 씨앗을 뿌렸으면 한다. 그 씨앗이 자라 20년 뒤 한국시장에 다양한 품종의 농산물들이 가득해지길 바라본다.

원승현(그래도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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