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입력 : 2022-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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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먹는다. 십수년 전에 산 허름한 아파트에서 무엇 하나 손대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고, 옷은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챙기는 편이다. 나의 기본적인 의식주는 이렇게 완성된다.

농업분야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하고 가르치지만, 기후변화로 기본적인 의식주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걱정은 크게 하지 않고 살아왔다. 기후변화는 아직 먼 이야기고 책상 위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국제 동향을 살펴보면 의식주, 특히 ‘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국제 식량 수급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 곡물 가격이 최근 2년 동안 50%가량 상승했다. 올해 2월 수입 곡물의 1t당 가격은 386달러로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20년 2월보다 47.4% 올랐다. 올해 2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1996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곡물 수입 가격 상승은 곧바로 우리나라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런 곡물 가격 상승은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더 가팔라지고 있다. 세계 1위 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밀 수출 금지령을 확대하고 있고, 세계 5위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에선 전쟁 장기화로 밀 재배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곡물이사회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곡물 수입 의존 국가들이 7월부터는 밀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최근 “식량안보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식량주권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 곡물 가격 변동은 국제 정세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농업 특성상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과거 세계 곡물 생산량과 가격은 대체로 가뭄·홍수 등 재해나 병해충, 기온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의 빈도는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더 잦아지고 있다. 전쟁은 협상을 통해 종식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는 협상 대상이 아니고 협상의 당사자도 없다.

영국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최대 밀 생산지인 캔자스주·오클라호마주·텍사스주에서 극심한 가뭄이 들어 밀 흉작이 예상된다. 세계 7위 곡물 수입국인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20년 기준 45%, 곡물자급률은 2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주곡인 쌀은 그럭저럭 자급하고 있지만, 쌀 자급률도 2015년 101%에서 2020년 92.8%로 감소했다. 반면 일본은 식량자급률을 법제화하고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지난 50여년간 밀 자급률을 3%에서 10%대까지 끌어올렸다.

이러한 여건에서 우리 농업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재 우리나라 국가 온실가스 배출 총량 가운데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하지만, 그 3%라는 수치를 낮추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농업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은 우리가 농업과 식량을 포기하면 쉽게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후변화를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농업과 식량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불안정한 국제 식량 수급을 고려하면 오히려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다. 따라서 농업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정책을 개발할 때 국가 식량 수급 계획을 반드시 그리고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최우정 (전남대 교수·기후변화대응농생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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