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식량주권을 생각한다

입력 : 2022-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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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18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다. 23년간 권좌를 유지하던 벤 알리 전 대통령이 쫓기듯 해외로 망명했다. 이 여파는 다른 국가에도 미쳐 시민 궐기가 알제리·이집트·리비아·요르단·시리아로 번졌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이 30년 통치 끝에 2011년 2월 하야했고, ‘아랍의 미친개’라 불리던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같은 해 10월 반란군에게 살해됐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도 위기가 닥쳤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자 시리아 정권은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다. 결국 무장봉기가 발생했고 이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격화했다. 이 내전은 종족간 종교전쟁과 중동의 패권을 둘러싼 각국의 대리전쟁으로 번졌다. 수년간 혹독한 내전을 치르고서야 알 아사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랍의 봄’이 촉발된 큰 원인으로 극심한 식량고와 급격한 식료품 가격 상승이 지목된다. 2010년 러시아 밀 작황이 가뭄과 폭염으로 흉작을 기록했다. 세계 3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밀 수출을 막으면서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했다. 이에 독재와 부정부패, 사회적 불평등에 신음하던 아랍 각국의 민중들이 들고일어났다.

인간의 3대 욕구인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식(食)’은 부족한 경우 즉각 반작용이 나타난다. 그 반작용은 급격하고 예측 불허다.

‘아랍의 봄’이 일어난 지 10년 조금 지난 지금 아랍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 대규모 식량위기가 닥칠 것이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2010년 식량위기가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에 기인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지정학적 위기에서 촉발됐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올 2월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후 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세계 밀 수출의 23%를 차지한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세계 식량위기는 상당 기간 지속할 전망이다. 러시아의 밀 수출은 세계 각국의 경제 제재로 통제·봉쇄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농업을 돌볼 틈이 없다. 밀을 수확할 농부가 없고, 수확한 밀을 수출할 길도 마땅치 않다. 러시아는 이미 흑해를 접한 우크라이나 항구 도시들을 봉쇄했거나 함락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기도 하지만, ‘중동의 빵 바구니’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수출하는 밀의 약 40%는 중동, 남아시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로 향했다. 이들 지역의 식량 사정은 급격히 악화할 전망이다. 이 경우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 국가의 정권은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충격파가 다시 요동칠 것이다. 전세계가 밀접히 연결된 현시점에 우리나라만 무풍지대일 수는 없다.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밀과 밀가루 가격이 오를 것이고 이는 우리 식단과 간식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이런 걱정은 전쟁에 휘말려 삶의 터전을 잃은 국가의 국민이나 당장 끼니를 때울 수 없는 빈곤국 대중들의 고통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걱정의 틈새에서 우리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모두가 ‘의(衣)’와 ‘주(住)’에 몰두해 있는 동안 식량위기가 옥좨오는 것을 잊고 있던 건 아닌가?

날로 심화하는 기후변화에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가? 동으로는 우경화하는 일본, 서로는 공세의 칼을 가는 중국, 북으로는 호전적인 북한 세습 정권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를 타개할 역량을 갖췄는가? 결국 모두 식량주권 문제다. 곧 농업문제다.

윤배경 (법무법인 율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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