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도매시장 정가·수의 매매 활성화의 맥점

입력 : 2021-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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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수의 매매 일본 사례 참고해

중도매인 대형화·산지 규모화를

 

우리나라 도매시장에서 농산물 거래는 전체 물량의 80% 이상이 경매거래로 이뤄진다. 이처럼 경매거래는 농산물 거래의 대표적인 방식이지만 가격이 불안정하다는 단점 때문에 경매방식 자체의 발전이나 거래방식의 다양화가 요구돼왔다.

이에 정부와 학계·이해관계자가 경매거래의 보완책으로 정가·수의 매매를 제시했다. 이는 정가거래와 수의거래(흥정 또는 협상거래)를 포함한 제도로, 출하자가 가격·물량·출하시기를 정해 판매를 의뢰하면 중도매인이 이를 중재·협상하면서 농산물 출하 및 소비자 구매가 이뤄진다.

2013년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 수립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으로 정가·수의 매매는 도매시장에서 경매거래와 대등한 거래방식으로 인정받았다. 정부는 정가·수의 매매 비중을 높이기 위해 시장별로 달성목표를 부여하고 도매법인 평가에도 이를 반영해 법인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하도록 했다. 실제로 도매법인 중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고 거래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정가·수의 매매 비중이 20%에 미치지 못하는 등 성과가 저조하자 정부는 그 원인을 도매법인·중도매인들의 인식 결여와 노력 부족으로 진단하고 활성화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가·수의 매매 전담 경매사 배치를 의무화하고, 도매법인 평가 시 평가항목에 정가·수의 매매의 가중치를 높였다.

이러한 방안들은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화살이 표적을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도매시장 내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에만 국한해 대책을 내놓은 것이 문제다. 오히려 도매시장 밖을 봐야 한다.

일본은 양판점·슈퍼마켓 등 소매점들이 개장에 앞서 도매시장에 출하된 농산물 중 필요로 하는 상품을 경매 전에 먼저 뽑아가는 선취가 크게 늘고, 산지농협도 가격이 불안정한 경매보다 판매 희망가격을 제시해 도매법인을 통해 예약형 정가·수의 거래로 판매하는 비중을 높였다. 그 결과 정가·수의 매매 비중은 1990년대말 50%에서 지금은 90%에 달하고 있다.

우리도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만 닦달하는 데서 벗어나 소매점 등 구매자와 산지 출하자의 요구를 끌어들여 이를 연결하고 맞추는 방식으로 정가·수의 매매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가·수의 매매를 할 수 있는 구매자는 적어도 슈퍼마켓 이상의 대형 소매유통체인과 대량 농산물을 공동구매할 수 있는 슈퍼마켓 공동물류센터, 요식업체인 연합, 대량 급식업체 등이다. 이들을 도매시장 구매자로 끌어들여야 하나 안타깝게도 중도매인 규모가 너무 영세하다. 현재 중도매인 취급 규모는 소형 슈퍼마켓이나 음식점 납품업자들에게 공급하는 정도다. 대형 구매처를 대상으로 공급하는 비율은 10%도 채 안된다. 반면 일본은 도매시장 중도매회사의 판매처 중 70%가 대형 양판점이고, 20%가 일반소매점이며 나머지 10%가 요식업과 가공업체다. 이에 중도매인을 대형화해 대형 구매처의 공급 루트를 되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산지도 마찬가지다. 영세한 개별 농가나 작목반 규모로 출하하는 소량 농산물로는 정가·수의 매매가 어렵고 최소 산지유통센터(APC)를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나 연합판매 단위의 규모화된 물량이 돼야 거래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도매시장 내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도 정가·수의 매매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높여야 한다. 농산물 거래의 전문성을 기르고 적극적으로 거래를 유치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외부적 요구와 일치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김병률(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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