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농민의 정의는 무엇인가

입력 : 2020-05-27 00:00



법학을 공부하다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정의’다.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이다. 법학 과목시험을 채점할 때 답안에 제일 먼저 보이는 정의가 잘못됐다면 그 뒤의 요건이나 효과는 볼 필요도 없이 오답이다. 그 정도로 정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법률적 정의와 현실 농민 괴리 커

의견 수렴해 최대한 일치시켜야


이렇게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실무를 하고 매너리즘에 빠져들면 정의를 간과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때가 많아진다. 결국 정의를 무시한 여러 정책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그때가 되면 ‘과연 이것은 무엇을 위한 정책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직업병의 발로로 농업·농민·농촌 등의 법률적 정의가 궁금해 찾아본 적이 있다. 특히 농민의 법률적 정의가 궁금했다. 과연 법률적으로 농민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고 부르는 농부는 농민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이 글에서 ‘농지법’이 규정하는 농업인과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서 규정하는 농업인의 차이와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일단 법조문을 나열하는 것 자체가 독자들을 피곤하게 할 뿐 아니라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농민과 법률적인 개념인 농업인이 많은 부분 일치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 역시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농업인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농업의 보호·육성의 헌법적 의무가 있는 국가는 농업인을 기준으로 농업정책을 구상하고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배우자를 도와 함께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업인일까?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사안처럼 농지를 소유만 하고 있다면 어떨까? 1000㎡(302.5평) 미만의 농지를 재배하는 사람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업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울 도심에서 스위치만 누르며 실내 농업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은? 만약 이들이 농민이라면 각종 보조금을 받고 농사용 전기를 사용할 수 있을까?

아마 독자들도 위와 같은 질문에 올바른 답을 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농민과 법률적인 농업인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마지막 예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자동화의 진척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농업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경우가 계속 생길 가능성 또한 커지고 있다.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육체적 노동이 전혀 없는 첨단농업이 우리의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시대다. 과연 거대 자본 등을 활용한 이같은 농업을 농업의 테두리에 포함해 지원해야 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는 이뤄진 것인지 의문이다.

하루속히 입법부와 정부는 여러 의견을 수렴해 농민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법률적 정의를 최대한 일치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정의에 따라 농업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물론 농민의 의미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농업인이라는 법률적 정의가 일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완전히 일치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법률적 정의가 이대로 계속돼 현실과의 괴리가 커진다면 농업정책의 방향성을 잡을 수가 없다. 방향타를 잃어버린 배가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최재욱 (법무법인 디라이트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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