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매시리’를 통해 본 정책지원사업의 함의

입력 : 2019-10-05 13:19 수정 : 2019-10-08 23:28

과거 정책사업 실패 ‘반면교사’로 실행 앞서 도입여건부터 다져야

 

1999년 첫선을 보인 매실음료 <초록매실>은 당시 중소기업 규모의 웅진식품이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상품이다. <초록매실>은 출시 이후 최단기간에 1억개의 판매기록을 세우고 1000억원의 연 판매액을 달성하면서 음료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주목받았다. 이렇게 성공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은 <초록매실>은 사실 국내 농업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 수입 매실을 주원료로 사용해 국산 매실의 매출증대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초록매실>이 국산 매실을 썼다면 우리농산물의 부가가치와 농업소득을 증대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사실 <초록매실>이 나오기 전에 국산 매실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 사례가 있었다. 경남 하동농협이 <초록매실>보다 6년 정도 앞서 매실가공사업을 통해 매실음료 <매시리>를 시장에 선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시리>는 약 5년 만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매시리>는 1993년 농림수산부의 ‘농산물가공산업육성 및 품질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에 따라 농산물가공산업을 육성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농가소득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탄생한 정책사업의 산물이었다. 당시 매실 주산지인 하동이 주로 일본으로 매실을 수출해 소득을 올리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매실음료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현 한국식품연구원)이 제품개발 업무를 맡았으며, 정부 보조금 등으로 1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설립하고 <매시리>를 생산했다.


이렇게 시작한 정책사업이 실패한 이유는 생산을 위한 하드웨어 측면의 준비가 돼 있었던 데 반해 경영전략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준비나 환경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당시 필자가 하동농협의 매실음료사업을 포함해 농림수산부의 농산물가공산업육성정책에 대한 진단연구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매시리>는 마케팅 믹스의 4요소인 판로(Place)·가격(Price)·촉진(Promotion)·상품(Product)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됐다.


그 당시 콜라 한캔이 250원 정도였던 것에 비해 같은 용량의 <매시리> 가격은 400원으로 높게 책정됐다. <매시리>는 자체 판매망을 구축하지 못한 데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 때문에 대량 구매처를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매시리> 브랜드 자체로 소비자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고, 자본력 부족으로 신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판촉이 어려워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주요 농산물의 주산지 농협들도 농산물가공사업에 대거 뛰어들었지만 <매시리>와 유사한 이유로 성공을 거둔 사례는 많지 않다. 그 후 농산물가공산업육성정책은 여러차례 법령 변경과 정책사업의 변화를 거쳤다. 그러나 여전히 농산물 부가가치 제고를 통한 농민의 소득증대는 농업정책의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 정책의 진단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현실을 반영한 정책을 수립·실행해야 한다. 지난 정책 속에 담긴 뜻이 향후 정책 수립에 올바르게 반영될 수 있다면 비록 성적이 좋지 못한 정책도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사례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시리>를 포함한 당시 농산물가공사업 사례들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앞으로는 정책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과거 정책사업의 실패사례들을 모아두고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농협이 앞장서 과거 수행한 정책지원사업의 사례를 발굴하고, 정부도 이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매시리> 사례를 통해 우리는 정책지원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업 대상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업집행에 앞서 정책도입의 여건부터 제대로 다져 정책지원사업의 성과를 높여야 할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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